업계 ‘사실상 사전검열 제도’ 주장

정부 ‘사행 방지 위한 최후의 보루’입장 불변
 
[더게임스 모승현기자] 최근 헌법재판소가 비디오물 등급 보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게임에 대한 ‘등급 분류 거부’도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비디오물과 게임물은 창작 콘텐츠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며 ‘등급 분류 거부’ 등급을 계속 유지시켜 나갈 방침이다.

 

 특히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가 지난 2007년 ‘등급분류 거부’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해 놓고 있어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떻게 내려질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아케이드게임업계는 그야말로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게임물등급위의 등급분류 거부가 주로 아케이드게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아케이드업체들은 게임물을 만들어 놓고도 그대로 창고에 처박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와서야 아케이드업계의 지속적인 요구로 정부는 게임기에 감시장치를 부착해 등급을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사행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게임물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등급을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월 말 헌법재판소는 구 음반ㆍ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제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비디오물의 등급보류에 대해 ‘사전검열’에 해당한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판결문에서“비디오 물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영상물 등급 위원회가 등급의 분류를 보류해 유통을 금지하면서도 그 기한을 명확히 하지 않고 있는 제도는 사전 검열에 해당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에따라 게임업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2조 ‘등급분류 거부’규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게임법이 구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음비게법)에서 분리된 개별법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법조항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개·변조 우려한 등급거부는 ‘위헌’
 그동안 게임위가 등급거부 또는 예정 결정을 내린 작품은 지난 11월21일을 기준으로 무려 1173 건에 달한다. 이에따라 업계에서는 등급분류 거부 규정이 게임물의 사행성 요소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이긴 하지만,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게임물까지 등급거부 결정이 내려지거나 사행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등급거부가 이뤄지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캡콤엔터테인먼트의 ‘데드라이징’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데드라이징’은 과도한 폭력성이 원인이었다(최근 ‘데드라이징’은 청소년이용불가등급을 부여받았다). 또 대다수 아케이드게임물의 경우 등급결정 후 시장에서 개·변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등급거부를 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아케이드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바다이야기’사태로 아케이드게임물의 사행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단지 개·변조 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 등급결정을 거부하는 것은 법이 정한 위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및 게임위를 비롯한 정부측 관계자들은 비디오물과 게임물은 창작 콘텐츠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영상을 통해 의사표현이 이뤄지는 것은 같지만 게임물은 비디오물에 비해 플랫폼의 확장범위가 크다. 또 비디오물은 단순 폭력성, 선정성 등의 심의요건만을 충족시키면 된다.


 하지만 게임물은 지난 ‘바다이야기’사태에서 나타나듯 사행성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잠재적인 요소가 내포돼 있다. 결국 현행 등급분류 거부 규정은 사행성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최소한의 법적인 규제라는 것이다.


 이에 관련 전창준 게임위 정책지원팀장은 “현행 법률에 따른다면 경품을 지급하지 않는 아케이드게임물은 등급이 결정되야 하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정상적인 심의를 받고 유통된 전체이용가 등급의 일부 아케이드게임물이 시장에서 경품용 아케이드게임물로 개·변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장에서 개·변조되는 작품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등급 결정은 사회적 공익에도 맞지 않는다”며 “모든 아케이드게임물에 대한 등급거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철저한 심의와 기기검사를 통해 등급거부가 결정되고 있다. 또 내용정보표시장치가 의무화될 경우 아케이드게임물에 대한 등급거부 결정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등급거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사행성게임물 유통 금지 ‘원칙’
 아케이드업계의 요구와는 달리 게임물에 대한 등급분류거부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다수 등급거부된 게임물이 시장에서 사행성게임물로 개·변조될 우려가 있거나,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자동진행, 재산상의 이익 또는 손실 등을 유발한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황성기 동국대학교 법대 교수는 지난 ‘게임법’공청회에서 “게임법의 등급거부 제도는 정당한 권한을 갖추지 못한 게임물에 대한 등급결정을 보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게임위가 등급분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불법행위 또는 불법행위수단, 게임위 관할대상이 아닌 것을 등급분류절차에서 배제하기 위한 절차로써  기능 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면서 게임과 게임아닌 것에 대한 분리를 전제로 한 등급거부는 위헌소지가 없다고 말했다. 등급거부 제도는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 사행성게임물의 유통을 금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문화부 최종철 사무관은 “현행 게임물 등급거부 제도는 그 입법취지가 사행성게임물의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사전검열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모든 게임물에 대한 등급결정이 이뤄질 경우 자칫 지난 ‘바다이야기’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러나 사행성게임물을 제외한 여타의 게임에 대한 등급거부 결정이 이뤄지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는 만큼 법적용을 보다 엄격히 할 필요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사행성 게임물의 유통 금지라는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는 하지만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특례법’, ‘형법’등 타 법률을 통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등급거부의 경우 법의 입법취지에 맞는 사행성게임물에 한해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에서 개·변조될 우려가 있는 작품의 경우 등급결정 후 철저한 사후관리를 통해 처벌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부, 반려제도 신설 검토
 지난해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가 ‘등급분류거부’와 관련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언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다. 비디오물에 대한 헌재의 판결도 2004년에 위헌신청이 제기된 이후 4년만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업계도 헌재의 결정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문화부도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게임법 개정안에 ‘반려’제도를 추가하기로 했다. 법조항에 반려할 수있는 조건을 명시함으로써 아무 게임이나 등급분류를 거부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문화부가 개정안에 포함시킨 반려제도는 ▲기기검사에 합격하지 아니한 게임장용게임물에 대하여 등급분류를 신청한 경우 ▲등급분류를 위하여 필요한 연령확인수단이 미비하거나, 거짓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등급분류를 신청한 경우 ▲등급위원회가 등급분류를 위해 요청한 관련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 ▲그 밖에 등급분류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등에 한해 이를 반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게임위는 그 내용의 구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운영방식 또는 기기장치 등이 사행성을 조장할 우려가 현저한 경우에는 사전에 경찰청장,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제4조에 의한 사행행위통합감독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하여 등급분류신청을 반려할 수도 있다.


 이는 현행 게임법이 게임물이 아닌 사행성게임물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한 등급거부 조항이 원 취지와 달리 과도한 폭력성 또는 단순한 서류상의 오기로 인한 문제로 일부 작품의 등급결정이 거부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행성게임물에 대해서는 현행 등급거부 제도를 유지하고, 정당한 근원을 갖추지 못한 작품에 대한 등급신청을 반려함으로써 내용심의가 아닌 외적인 요소로 인한 등급거부 결정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등급거부에 대한 위헌논란이 있지만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불법적인 게임의 서비스를 목적으로 하는 업체의 게임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라며 “등급거부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는 게임과 게임 아닌 것에 대한 철저한 분리를 통해 건전한 게임문화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단순한 행정상의 결정보다는 철저한 사후관리가 함께 병행돼 사행성게임물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결국 등급거부의 위헌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업계 스스로 사행성게임물 퇴치 노력을 진행, 게임에 대한 인식제고와 건강한 게임문화 확립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mozira@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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