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게임물등급위원장>
 베스트셀러 소설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라는 이름은 재미있다. 고교시절부터 문학동아리를 하며, 시인으로 등단하기 위해 애썼지만 몇해씩 신춘문예에 낙방했던 ‘류철균’이 본명이다.
 
 그는 정작 등단은 88년 평론가로 했고, 이어 소설가로 방향을 틀어 1993년 만 27세의 약관에 이인화라는 이름으로 출세작 ‘영원한 제국’을 발표해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이인화라는 필명을 채만식의 소설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자로 ‘二人化’로 표현해 본명과 필명, 시와 소설을 동시에 쓰는 작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특정인에 대해 써보고자 용기를 낸 것은, 혹시 그에 대해 상세히 모르는 게임관계자들에게 게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그를 소개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셸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제목의 영화처럼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적지 않다.
 
 작년 11월 게임물등급위원회 초청강연에 나선 그는 지식의 깊이는 물론 솔직담백한 고백으로 직원들의 혼을 빼놓았다. 정보화혁명의 이상과 온라인게임의 문화를 주제로 한 그의 강연은 각광받던 작가이자 교수가 게임에 빠져 중독치료까지 받았던 체험담, 온라인게임에서 새로운 에너지와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본업인 국어국문학과 강의를 때려치우고 생소한 디지털미디어학부를 만든 과정, 바꾼 길을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가지고 있던 책 7000권을 태워버린 얘기, ‘리니지’에 빠져 3박4일간 침식을 전폐하고 길드를 조직하는 등 ‘가상의 세계’에 흠뻑 취했던 경험 등 다채롭고 감동적이었다.
 
 지난 달 만나 창조산업 온라인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의 강점,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진 ‘가상의 세계’라는 시장을 향해 ‘노마드 코리아’가 나가야 할 길, 그러나 자칫하면 게임후진국으로 탈락할 수도 있는 위기상황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이 교수의 정연한 논리와 열정에 압도되었다.
 
 그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던 어떤 사람의 말을 인용해 “가상의 세계 게임에는 국경이 없지만 게임문화, 게임산업에는 국경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게임의 사업모델이나 기술 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앞서있는 우리가 사용자들의 창작권과 거래를 인정하는 문화적 제도적 틀의 미비 때문에 정작 경제적 실익을 다 놓치게 된다면, 그런 국가적 손실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주장엔 당장에 일반화하기에 다소 무리하게 보이는 구석들도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온라인게임에서 300회 이상의 아이템 거래를 했는데 한 차례도 잘못된 일을 당한 적이 없다는 그는, 온라인 거래에 생각보다 질서가 있다고 믿고 가상공간에서의 상거래 법제화를 주장한다.
 
 게임이 현실도피를 하기에는 너무나 사회적인 매체임을 발견할 때의 기쁨, 게임에서 인간의 덕성과 국경을 넘는 공동체 정신을 체험할 때의 희열, 게임이 가져오고 있는 문명사적 전환의 의미를 어린애처럼 맑게 말하고,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충고를 ‘가상공간에 지존은 없다. 대박도 없다. 게임은 죽을 때까지 할 취미생활일 뿐이다’라고 간명하게 정리해 내는 이 교수.
 
 스스로 게임고수이자 온라인게임 스토리 구성작가이며 무엇보다 디지털미디어학부라는 신천지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이 게임문화와 이론의 개척자는, 게임한국에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2003년부터 미친 듯이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해, 당분간 글쓰기를 포기했을 만큼 게임에 빠져있는 이 교수. 철학자 김용옥도 그렇지만, 극단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기 분야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혼신의 노력을 다 하는 천재들을 우리는 보다 소중히 여겨야 한다.
 <keyman@gr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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