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ORPG에선 고레벨만이 활동할 수 있는 사냥터가 존재한다. 이 사냥터들은 초보 유저들의 출입이 시스템 상으로 원천봉쇄돼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유저들 스스로 기피하기 때문에 초보 유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잘못 입장했다가는 애써 키운 캐릭터가 한 순간에 운명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혼’이 새로 오픈한 ‘생사의 탑’도 이러한 고레벨 사냥터의 하나다. 왠만한 레벨로 입장했다가는 적과 마주치자 마자 사냥터 이름 그대로 생사를 달리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이 곳에선 50레벨의 고수도 몬스터를 만나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이번 미션은 이 ‘생사의 탑’에서 고작 10레벨의 캐릭터로 첫 번째 관문인 ‘망각의 방’을 통과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공과 허공답보를 사용해 적 몬스터와의 일체 접촉을 피하며 ‘생사의 탑’ 10층까지 올라야 하는 것이다. 레벨 10의 캐릭터는 적과 옷깃만 스쳐도 비명횡사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듣기에도 어려운 미션인만큼 ‘생사의 탑’ 맵 제작에 참여한 엔엔지의 함영진 기획자가 도전에 나섰다. 함씨는 자신이 제작한 맵을 통과해야 하는 미션임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여정을 예견한 듯 한 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시작도 전에 마주친 암초
  함씨는 우선 몸을 풀기위해 고레벨의 캐릭터를 생성해 ‘생사의 탑’에 입장, 적들과 접촉하지 않고 탑을 오르는 연습을 했다. 적들의 이동경로를 예측하며 생사의 탑을 한 계단씩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무리 지어다니는 몹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대미지를 입은 것이다. 고레벨의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벌써 황천행 열차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미션은 미션. 드디어 생사를 건 모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 도전부터 운이 따르지 않았다. 생사의 탑 입구를 어마어마한 덩치의 보스몹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 현재 여러가지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는 귀혼 개발팀의  한 개발자가 시험 삼아 풀어 놓은 보스몹들이었다.
 
  “헉 이러다가는 입장도 힘들겠네요.”
 
  보스몹들을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의 우려는 곧 현실이 돼버렸다. 경공과 허공답보를 이용해 요리조리 피하며 입구로 향했으나 어느 순간 보스몹들에 둘러싸였고 힘 없이 스러져 갔다.
 
  “보스몹들 좀 제거해 줘요!”
 
  함씨는 볼멘소리로 다른 개발진들에게 하소연 했다. 한참의 정리 끝에 두번째 도전을 할 수 있었다.
 
 # 포기치 않는 것이 사는길
  처음 들어선 망각의 방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굶주린 하이에나와 같이 먹이를 찾아 헤메는 암자귀들이 보였다. 함씨는 경공과 허공답보 등의 무공을 사용해 암자귀들을 피하며 다른 방으로 통하는 입구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맵 제작자답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향을 잡았다. 첫 관문은 그야말로 무사통과였다. 걸림돌이 되는 암자귀는 덩치가 작을뿐 아니라 움직임도 그리 빠른 편이 아니었기때문에 쉽게 회피할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싱거운 미션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자귀의 숫자가 늘어난 두 번째 방에 입장해서도 함씨는 당황하지 않고 다음 방입구를 향해 힘찬 허공답보를 계속했고 어렵지 않게 3번째 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 도전자보다 더욱 초조해진 것은 기자였다. 별 어려움 없이 완수할 수 있는 미션은 황당미션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번째 방에 들어선 함씨는 굳은 얼굴로 한참 동안 화면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거 불가능한데요.” 그의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황당한 도전이기는 해도 아예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하는 것은 미션임POSSIBLE의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다급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물었다.
 
  “이곳을 통과할 수가 없어요.”
 
  그가 가리킨 곳은 외길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큰 칼을 들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참수귀가 있었다.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다른 미션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머릿 속이 복잡해졌다.
 
  “잠시만요 여기서 가끔 그냥 벽을 통과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만든 맵의 사소한 실수인데 그걸 한번 이용해 볼께요.”
 
  함씨는 허공답보를 사용해 계속 벽에 캐릭터의 머리를 부딪혀 보았다. 여성 캐릭터가 계속 맨땅에 헤딩(?)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속으로는 통과하기만을 빌었다. 하지만 편법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마땅한 해법을 생각해 내기도 힘들었다.
 
 # 불굴의 의지로 극복
  그 때 함씨가 반 포기 상태에서 한 행동 덕에 계속 미션 수행을 할 수 있었다. 한 번 부딪쳐 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에 허공답보를 이용해 참수귀를 뛰어넘어 본 것이다. 머리가 동굴 천장에 닿을 듯 큰 참수귀였기 때문에 도저히 가망성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왠일인가? 참수귀를 뛰어넘은 캐릭터가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역시 도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일생일대의 난관을 극복한 함씨는 더욱 열심히 미션에 임했다. 거대한 참수귀의 등장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7번째 방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8번째 방으로 가는 입구를 발견한 함씨는 무엇 때문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이 장소가 다음 방으로 가는 입구인지 함정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함정인지 입구인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만든 맵인데도 헛갈리네요. 하 하 하”
 맵 제작에 직접 참여했던터라 함씨는 쑥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확인할 방도가 없어 일단 입구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으로 들어선 캐릭터는 한없이 추락했다. 그가 선택한 곳은 함정이었다.
 
  “안돼∼” 추락하는 캐릭터를 보고 함씨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함정에 빠지면 다시 ‘생사의 탑’ 입구에서 시작해야 하는 때문이다. 그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기자는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도전을 종료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함씨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자신이 만든 맵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유저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성한 캐릭터의 아이디가 자신의 여자친구 이름이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눈은 어느새 투지로 가득차 있었다. 처음 이 미션을 접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함씨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이제 미션 완수에 굶주린 투사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다음 시도에선 9번째 방에서 또 다시 잘못된 입구를 선택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노력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다음 도전에서 그는 모든 마물들과의 접촉을 일체 하지 않은채 열 번째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도전에 성공한 함씨는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가끔 들어와 보면 이런 놀이를 하는 유저들을 볼 수 있어요. 그 때는 몰랐는데 상당한 난도가 있는 미션이었네요. 유저분들도 이 생사의 탑에서 탑오르기 경쟁을 해보세요. 생각보다 재미있어요.” 그는 역시 프로였다. 어려운 도전을 끝내자 마자 이번 미션이 유저들에 ‘귀혼’의 새로운 놀이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를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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