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상상력에 '끼'를 더해봐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게임의 장르는 과연 무엇일까? ‘팩맨’ 같은 퍼즐액션? 아니면 ‘갤러그’ 같은 슈팅게임? 뜻밖이겠지만 세계 최초의 게임 장르는 스포츠, 그것도 테니스게임이었다. 1958년 미국 롱아일랜드의 ‘브룩 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장난 삼아 만들었었던 테니스게임이 바로 세계 최초의 게임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비교적 간단한 룰을 가지고 있으며, 1대 1 대전이 가능하고, 평면적 연출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게임 소재를 찾아보면 답은 금방 나오기 때문이다. 테니스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1958년에 총 22명이 뛰는 축구게임을 만들었어야 했을까? 아니면 몸을 잡고 뒤집고 구르는 레슬링 게임이라도 만들어야 했을까? 테니스는 무엇보다 간단하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 가장 만들기 편한 소재

테니스 게임은 언뜻 비주류인 것 같지만 스포츠 게임 장르에서는 굳건한 고정팬을 가지고 있다. 일단 수많은 관중을 몰고 다니는 것은 다른 인기 스포츠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1대 1 혹은 2대 2로 대전을 하는 게임 가운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는 드물다. 현실의 테니스도 마찬가지. 테니스 스타들은 정작 코트 안보다 밖에서 더 돋보인다.

최근 떠오르는 마리아 샤라포바는 테니스의 룰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이름을 들어보았을 정도의 세계적인 스타다. 미국의 윌리엄스 자매를 모르는 사람도 드믈다. TV만 틀면 나이키나 아디다스, 리복 광고에서 신나게 테니스 채를 휘두르는 그녀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권투처럼 반 나체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패션 센스를 뽐내며 오랫동안 카메라에 잡히는 테니스 선수들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게임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테니스는 가장 게임으로 만들기 편한 소재 중 하나다. 비록 세계 최초의 게임 이후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했지만, 현실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사들은 곧 다양한 테니스 게임을 만들어 냈다.

테니스 게임의 역사를 짚어 보면 이 매력적인 스포츠를 포기하지 않고 게이머들의 승부욕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제작사들의 모습을 똑똑히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게이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버추어 테니스’ 시리즈가 있다. 제목 그대로 최대한 현실적인 테니스의 감을 게이머에게 그대로 살려주고자 했으며, 실제로 활약하던 테니스 스타들을 플레이어가 사용할 캐릭터로 등장시켜 대리만족 욕구까지 멋지게 채워주었다.

짧은 치마를 팔랑거리며 라켓을 휘두르는 등신대의 캐릭터는 공이 라켓에 부딪힐 때의 타격감까지 완벽하게 재생해주고 있었다. 게이머들은 곧 이 게임에 열광하게 된다.

# ‘리얼리티’가 최고의 미덕(?)

‘버추어 테니스’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테니스 마스터즈’ 시리즈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테니스 마스터즈’ 시리즈는 보다 사실적인 테니스를 구현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경기가 계속되면 피로도가 누적된다거나 하는 점은 그야말로 게이머가 한 사람의 테니스 선수가 된듯한 느낌을 준다.

사실 게임에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모니터를 박살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주는 시스템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테니스 마스터즈’ 시리즈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테니스의 모습은 현실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게이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듯하다.

어쨌든 테니스코트의 모습이라던가, 선수들의 움직임에 따른 발자국 등은 테니스 게임들이 계속 ‘리얼리티’를 추구해간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밖에는 세계 4대 테니스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경기 클럽에서 이름을 따 온 ‘롤랑 가로스 테니스’가 있지만,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화 측면에서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해 게이머들에게서 멀어져 간 비운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온라인 테니스 게임계에 이단아가 등장한다.

엔씨소프트의 ‘스매쉬스타’는 테니스 게임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게임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의외성’이다. 기존의 리얼 테니스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갖가지 변칙적인 룰들이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알기 쉽게 남코의 히트작인 PS용 게임 ‘모두의 골프’를 한 번 생각해 보자. 타이거 우즈와 아니타 소랜스탐의 이름이 매일 스포츠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실제로 골프를 즐겨본 게이머들이 얼마나 됐을까? 이런 게이머들의 높은 진입장벽을 단박에 깨버린 것은 바로 ‘모두의 골프’ 가 보여준 코믹한 캐릭터들과 알기 쉬운 게임 룰,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플레이의 삼박자였다.

# ‘리얼리티’를 ‘카타르시스’로 뒤틀다

‘스매쉬스타’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모두의 골프’가 비주류 스포츠 게임을 캐릭터의 의외성과 화려한 연출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면, ‘스매쉬스타’는 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을 한껏 추가했다. 아이템을 이용한 능력치의 놀라운 변화, 게이지가 쌓이면 발동할 수 있는 캐릭터 특유의 필살기, 맵에 따라 천양지차의 특성을 보여주는 경기 무대까지.

이 정도가 되면 이미 ‘정도(正道)의 길’을 걷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 자신 안에 잠자고 있던 끼(?)를 마음껏 발휘해 오직 게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짜릿한 승부를 즐겨주는 것이 바로 ‘스매쉬 스타’의 목적이다. 그리고 이 게임은 그러한 소기의 목적을 매우 충실하게 만족시켜주고 있다.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들, 화려하고 경쾌한 액션, 승부욕을 돋궈주는 반칙 시스템으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존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스포츠 게임이나 캐주얼화된 스포츠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큰 변화이다.

‘귀족 스포츠’ 또는 ‘신사들의 스포츠’라 불리며 매너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전통적 스포츠인 테니스에 이런 각종 퍼포먼스를 추가해 가져오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크다. 게임은 아니지만, 만화 ‘테니스의 왕자님’이 어째서 그렇게 큰 반향을 일으켰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 ‘피구왕 통키’에나 나올법한 필살기들이 난무하는데다 예의 바르고 겸손(?)해야 할 캐릭터들은 자아도취의 극을 보여준다.

귀족이나 신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직접 테니스 라켓을 들고 테니스 장으로 가라. 굳이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필요가 없다. 중, 고등학생도 아닌 어린이들이 상대를 도발해가며 훼이크를 쓰고,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를 능가하는 파워 스매쉬를 구현하는 ‘스매쉬스타’는 가상의 세계에서 또 다른 나를 찾고자 하는 게이머들에게 기꺼이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버추어 테니스’가 자신이 현실의 스포츠 스타가 되어보는 경험을 준다면, ‘스매쉬스타’는 드넓은 온라인 세계에서 나라는 인격체가 진짜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마치 ‘풀파워를 담은 필살의 스트로크’처럼 절묘하게 뒤틀어 보여줄 테니 말이다.
 
김순기기자(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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