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레이싱 대표주자
불같은 스피드 '추종 불허'
 
게임에서 레이싱 장르는 흔히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첫 번째는 실제 자동차를 모는 듯한 ‘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현실이라지만 실제 현실에서 만끽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초고속’으로, ‘초고가’의 레이싱카를 운전하는 상상의 현실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를 고속으로 운전할 때의 쾌감과 그 속에서 ‘레이서’가 된 듯한 감정이입을 추구한다. 무척 매력적인 장르지만 제작하기가 어렵고 플레이하기도 힘들다. 초고속 주행이 쉽다면 누구나 레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난색을 표하는 장르다. 이것을 ‘시뮬레이션 레이싱’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게임으로서 레이싱을 즐기는 장르다. 자동차 면허 시험장 구경 한번 안해도 이 장르는 쉽사리 접할 수 있다. 극도의 스피드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왠만큼 숙달된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드리프트같은 고급 기술도 무난히 펼칠 수 있다. 아주 쉽게 주행하지만 레이싱 게임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스피드’와 ‘경쟁’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이 장르를 ‘액션 레이싱’이라 부른다.

레이싱 유저들은 이 두개의 장르를 구분하기 쉽도록 ‘그란 류’와 ‘릿지 류’라고 지칭한다. 이 두 가지 명칭은 각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명에서 파생된 것으로, 시뮬레이션 레이싱의 대명사 ‘그란투리스모’와 액션 레이싱의 대명사 ‘릿지 레이서’가 바로 그것이다.
 
# 한계에서 시작된 장르 그.러.나
 
액션 레이싱은 어쩔 수 없는 ‘한계’에서 출발한 장르다. 게임 하드웨어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 지금의 게임기들은 레이싱 게임을 만드는 데 충분한 파워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초창 게임기들은 이런 성능이 매우 부족했다. 제대로 된 레이싱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기의 높은 성능이 요구된다.

스피드를 극도로 요구하는 레이싱이기 때문에 그래픽 처리능력이 다른 게임보다 크게 요구될 뿐만 아니라, 트랙에서 경쟁하는 타 차량의 인공지능도 뛰어나야 한다. 여기에 엔진 효과음의 사실적인 표현, 다양한 코스 디자인, 물리 엔진에 의한 현실적인 충돌, 노면과 타이어의 마찰력 구현 등 여러 부분에서 복잡한 연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 등장했던 하드웨어들의 한계는 이같은 요소를 담기에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게임으로서의 레이싱’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사실성을 배제한 레이싱으로 이어졌다.

이런 경향은 아케이드(흔히 말하는 오락실)용 레이싱 게임과 함께 더욱 커졌다. 동전을 넣고 잠깐 즐기는 레이싱 게임에 ‘사실성’은 필요없는 요소다. 게다가 운전은 해 본적도 없는 낮은 연령층이 많기 때문에 이런 사실성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것보다는 최대한 멋진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확실한 속도감을 보여줄 수 있는 액션 레이싱 장르가 꽃을 피우게 된 것이다(그래서 액션 레이싱을 아케이드 레이싱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 ‘릿지 레이서’와 플레이스테이션
 
‘릿지 레이서’ 역시 아케이드용 게임으로 시작한 시리즈다. 액션 레이싱의 재미를 확실히 구현했던 ‘릿지 레이서’는 아케이드 센터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때마침 플레이스테이션이 발표됐다.

1994년에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은 3D 그래픽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최초의 게임기로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 게임산업은 최첨단 기술을 아케이드 센터의 게임에 가장 먼저 적용했었는데, 그런 고성능 작품들을 게임기로 이식하는 것이 게임기의 성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빠른 척도였다.

그런데 게임업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세가에 비해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막 첫걸음을 시작하는 단계. 당연히 아케이드 게임을 제작한 경험이 전무했다. 세가가 자사의 게임 ‘버추어 파이터’를 새턴으로 이식해 “오락실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을 집에서 즐긴다”라는 놀라운 특혜를 줬지만 소니에게는 그런 강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1등 공신이 바로 ‘릿지 레이서’다. 자사의 게임이 없었던 소니는 서드 파티 남코의 히트작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식하면서 오락실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인기 레이싱 게임을 가정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 인기 시리즈로서의 확실한 자리매김
 
‘릿지 레이서’와 소니는 호흡이 잘 맞아 지금까지도 인연의 끈이 이어진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발매될 때도 ‘릿지 레이서 5’가 출시됐으며 최근에 발표된 소니의 야심작 PSP에서도 ‘릿지 레이서’가 가장 먼저였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소니 진영의 확실한 우방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이 게임은 닌텐도64로 발매된 적 있으며 최근 닌텐도 DS로도 제작됐으나 ‘릿지 레이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릿지 레이서’의 우방 역할은 결코 남코와 소니의 계약 때문이 아니다. 철저하게 게임 자체가 뛰어났기 때문에 소니가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릿지 레이서’, ‘릿지 레이서 레볼루션’, ‘레이지 레이서’, ‘릿지 레이서 타입 4’, ‘릿지 레이서 5’, ‘릿지 레이서즈’ 등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로만 여섯 타이틀이 개발됐지만 단 한 번도 졸작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해당 하드웨어의 성능을 살린 뛰어난 그래픽과 사운드, 액션 레이싱이 가져야 할 재미와 게임성을 확실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릿지 레이서’는 액션 레이싱 게임으로서 뿐만 아니라 시리즈물이 가져야 할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다.
 
이광섭 엔게이머즈 팀장(dio@gamer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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