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힘이 돋보이는 스릴러
패닝의 연기 내러티브 압도.. 두개의 결말도 흥미진진
 
존 폴슨 감독의 ‘숨바꼭질’은 스릴러라는 장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관객과의 팽팽한 신경전의 제물로 아버지와 어린 딸을 제단 위에 올려놓는다. 장르적 공식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동선의 치밀함도 중요하지만 결말의 반전이나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인과관계의 구축이 빈틈없이 만들어져야 한다. ‘숨바꼭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내러티브의 힘보다 오히려 배우들이다.

엄마의 돌연한 자살은 어린 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데이비드 캘러웨이 박사는 아내의 자살 이후 9살짜리 딸 에밀리가 받은 정신적 충격을 걱정해서 뉴욕 외곽의 조용한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간다. 모든 것은 조용히 정돈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딸 에밀리도 상상 속의 친구 찰리와 함께 일상에 적응해 가는 것처럼 생각된다. 찰리는 그러니까 에밀 리가 만들어 낸 일종의 팬터지다.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들어 내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이겨내려는 방법은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가 진전되면서 찰리가 과연 상상 속의 인물인가에 의문점이 부여되기 시작한다. ‘숨바꼭질’의 영화적 재미는 일차적으로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관객들은 이제 감독이 쳐 놓은 함정을 피해가면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감독과 관객의 팽팽한 샅바 싸움에서 감독이 밀리면 스릴러 영화의 재미는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또 다른 복병은 바로 배우들이다. 데이비드 캘러웨이 박사 역의 로버트 드니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속에는 이미 영화사에 남는 수많은 작품 목록들이 들어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연기파 배우인 그의 상대역이 9살짜리 다코타 패닝이라는 것이다.

이미 ‘아이 엠 셈’에서 정신지체 장애자인 아버지 숀 팬의 깜찍한 딸 루시 다이아몬드 역으로 등장해서 전 세계의 영화 관객들에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다코타 패닝은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를 상대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연기의 향연을 보여준다.

다코타 패닝은 그녀가 5살에 데뷔한 ‘아이 엠 셈’에서의 연기로 방송비평가협회와 라스베가스 필름비평협회의 최우수 여배우로 선정된 바 있다. 그 이후 ‘스위트 알라바마’나 ‘맨 온 파이어’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숨바꼭질’은 ‘아이 엠 셈’의 연기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숨바꼭질’에서 엄마의 자살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다코타 패닝의 연기를 보면 누구나 온 몸에 소름이 돋을 것이다. 그녀의 연기는 잘 훈련된 배우가 감정선을 그리고 동작선을 만들어서 정교하게 재구축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험적으로 그런 캐릭터를 살아버린 조숙한 배우의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

특히 스릴러로서 ‘숨바꼭질’은 두 개의 결말을 갖고 있다. 총 102분 분량의 이 영화는 수입사에서 결말이 각각 다른 두 가지 버전을 들여와 극장마다 다른 버전을 반반씩 상영한다. 결말이 궁금한 사람은 다른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야 한다. 이것도 관객수를 늘리기 위한 또 하나의 마케팅이다. 그러나 우리들 머리 속에는 에밀리 역의 다코타 패닝만 무섭게 기억될 것이다. 물론 그녀의 연기를 돋보이게 만들어준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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