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보수주의 포장한 첩보 애니
영웅 복귀 설정 매력적···현란한 테크놀로지는 눈요기 감으로..
 
냉전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동구권의 대 몰락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됐다. 미국의 일방적 독주로 힘의 균형이 팽팽하지 않았던 90년대 초반에는 악의 세력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가 제작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9.11 테러는 미국 영화의 소재 확대를 불러 일으켰다. 지금 미국을 위협하는 주적은 이라크, 북한 같은 불량국가 이거나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다국적 테러리스트들이다.

냉전시대의 영화들이 주로 동구권 국가를 대상으로 각을 세웠다면 지금은 세계정복을 꿈꾸는 사악한 개인을 대상으로 각을 세운다. ‘인크레더블’은 인류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하는 007 시리즈의 기본 모티프와 영웅전설, 그리고 할리우드의 가족주의가 혼합된 애니메이션이다. 특이한 것은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할리우드 보수주의가 교묘하게 삼투돼 있다는 것이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배트맨이나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기존의 슈퍼 히어로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새로운 영웅을 창조했다.

모든 영웅들도 각각 남모르는 고난의 과정을 거쳐 그 위치에 올랐지만 인크레더블은 영화의 핵심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미 영웅이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과거에 영웅이었던 인크레더블이 15년 동안이나 일상인으로 생활하다가 악의 세력이 등장하자 다시 슈퍼 히어로의 자리로 복귀한다는 설정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그는 또 다른 여성 슈퍼 히로인과 결혼해 세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15년일까. 그것이 동구권 대 몰락의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크레더블이 평범한 직장인에서 다시 슈퍼 히어로의 슈트를 맞춰 입고, 개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를 데리고 영웅의 자리로 복귀하는 이유는 영웅심으로 전쟁의 광기에 사로잡힌 신드롬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같은 신드롬으로부터 9.11 이후 미국을 위협하는 알 카에다 조직과 빈 라덴의 흔적을 찾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인크레더블의 가족 구성은 정말 환상적이다. 퍼펙트 그 자체다. 개성 있는 가족 구성원의 초능력을 합하면 다른 도움 필요 없이 충분히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상체가 강조된 역삼각형의 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버지 인크레더블은 힘을 상징한다.

그는 헬스 클럽에 가는 대신 기차를 들었다 놓거나 거대한 트럭을 양 손으로 끌어당긴다. 어머니 헬렌은 포용력을 상징한다. 팔과 다리가 자유자재로 늘어나 무엇이든지 붙잡을 수 있는 캐릭터다. 십대 사춘기인 딸 바이올렛은 방어막을 만들고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비밀이 많은 사춘기 소녀들의 꿈을 초능력으로 부여한 것이다. 장난꾸러기 아들 대쉬는 눈부시게 빠른 발을 갖고 있고 젖먹이 잭잭도 잠재적인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크레더블에는 다른 흔한 애니메이션처럼 주 캐릭터를 보조하는 의인화 된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실사 첩보 영화나 영웅 영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에게 지급되는 비밀 신병기의 역할을 인크레더블에서는 슈퍼 히어로의 의상이 맡고 있다.

 따라서 의상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의 이미지도 중요하다. 감독 자신이 목소리 연기를 맡은 에드나 모드는 일본계와 독일계를 섞어 놓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선두에 서 있는 두 나라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악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초강대국의 힘이 필요하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의 일치된 단결이 우선시된다는, 미국 보수주의의 입김이 영화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크레더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컴퓨터 그래픽의 현란한 테크놀로지에 정신을 빼앗겨 그 속에 잠입한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눈치 챌 겨를도 없지만.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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