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욕망따라 춤추는 치정극
장식적 수사와 상투적 클리세만 남발
 
이것은 국제 사기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된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를 보면서 나는 수영만 야외상영관 의자에 앉아 분노했다. 한석규 이은주 성현아 등 화려한 스타들의 라인업, 비록 데뷔작 ‘인터뷰’는 실패했지만 단편영화 시절 이재용 감독과 공동으로 ‘호모 비디오쿠스’를 만들던 변혁 감독의 생기있고 창의적인 영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주홍글씨’는 배반감을 안겨준다. 왜 이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영화사 자료에는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분)을 중심으로 그가 만나는 세 명의 여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펼쳐지는 ‘주홍글씨’는 스릴러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욕망에 관한 탐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돼 있다. 기훈과 그의 순종적 아내 수현(엄지원 분), 도발적인 정부 가희(이은주 분)는 외형적으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동창인 가희와 수현이 또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다. 삼각 꼭지점의 정점에 있던 기훈, 그리고 양 옆에서 서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희와 수현의 관계는 영화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가희 혹은 수현을 정점으로 꼭지점이 이동한다.

따라서 가희와 수현은 외형적으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조적인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오케스트라와 로스트로포비치의 곡을 협연하는 첼리스트 수현에 비해 도발적인 정부 가희는 재즈 가수로 설정돼 있다. 열정적인 정부는 재즈 가수, 순종적인 아내는 첼리스트, 이런 설정 자체가 인위적이고 도식적이지 않은가.

‘주홍글씨’의 실패는 정부와 아내 사이를 줄타기하듯 즐기면서 살아가는 자기중심적 남자 기훈이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졌듯이 성공을 위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장식적 수사와 상투적 클리세를 남발한 감독에게 원인이 있다.

우선 영화적 내러티브는 사진관 남자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미망인 경희(성현아 분)와 남편, 그리고 경희의 정부, 그들의 삼각관계는 기훈 중심의 삼각관계와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한다. 물론 핵심은 기훈의 삼각관계다.

그러나 외적 사건과 내적 사건의 유기적 연결망은 엉성하기만 하다. 건조한 결혼생활에 지친 부인, 그 부인을 의심하는 남편, 경찰에게는 관계를 부인하는 경희의 정부, 그 외적인 삼각관계는 기훈을 정점으로 한 내적 삼각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스릴러적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혹은 사건을 미궁 속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어떤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사진관 살인사건이 등장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살인사건 용의자인 경희가 남편 살해 후에도 태연하게 사진관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일반적 정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후반부, 사건의 비밀이 드러난 후 한적한 저수지 근처에 차를 세운 기훈과 가희가 트렁크 안에 갇히게 되는 것도 우연의 남발이다.

갈등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려는 방법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총알로 구멍이 난 트렁크에 비가 와도 빗물은 새지 않는다. 기훈의 캐릭터는 형편없이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그의 마지막 절규와 몸부림을 욕망의 대가라고 설명한다면 너무 손쉬운 해답이다.

확실히 한석규는 불안하게 쫒기고 있다. 배역을 자기화시키던 놀라운 집중력은 사라지고 불안하고 삭막한 현실의 모습이 비친다. 성현아와 엄지원은 각각 그들의 전작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나 ‘똥개’보다 훨씬 표피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변혁 감독의 배우 조련술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은주 혼자서 빛나고 있다. ‘주홍글씨’는 세속적 성공의 욕망에 사로잡힌 재능있는 감독이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중심을 잃어버린 작품이다. 영화 속의 그들처럼.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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