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속 자정 배틀넷 재대결
'핵폭탄' 한방에 '와르르르' 폐허 진지 바라보며 프로게이머 높은 벽 실감
 
서지수와 재대결을 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지난 2주간 연습한 결과에 잔뜩 기대를 품고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지수는 MBC게임 마이너리그 예선전을 진행하고 있던 터라 날짜를 미루자고 했다. 이런∼ 쩝.

프로게이머와 경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러자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뭐 나에게는 그만큼 연습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니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마이너리그 예선전이 끝나는 2일 저녁에 Soul팀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수는 그날 밀려온 피로감에 일찌감치 집에서 뻗어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이후로는 모든 연락이 끊어졌다. 잠수를 타버린 것이었다. 김은동 감독과 최석민 코치가 이리 저리 뛰어다녀 봤지만 허사였다. 아이고 이러다 지수와의 경기는 고사하고 기사 못쓰는 거 아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지수와의 연락이 재개된 것은 이튿날인 3일 밤 10시 께 였다. “죄송해요. 너무 피곤해서 하루 종일 잤어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지수와 배틀넷에서 만난 시간은 밤 12시. 난 기다리느라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아∼ 이날 경기운은 지독히도 없었다. 맵은 첫 경기와 마찬가지로 로스트템플. 프로토스를 선택한 내 위치가 12시인 반면 테란인 지수는 2시 였다. 프로토스와 테란간의 대결에서 이런 위치는 프로토스에게는 최악이었다. 이런 위치라면 테란이 아주 유리했다.

자신의 진영에서 프로토스의 입구 앞 언덕에 탱크를 시즈모드로 세워두면 프로토스의 병력이 진출하기가 아주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그렇게 위치한 것을. T.T

벌써부터 “또 졌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운이 좋아도 밀릴텐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물량이라도 많이 뽑아 시원하게 싸워보고 싶었다.

연습한 대로 원게이트에서 사이버네틱스코어를 올리고 드라군 사거리업을 했다. 그러는 도중에 정찰을 보낸 프루브를 통해 지수가 팩토리를 2개 째 건설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빠른 멀티를 안하고 벌처를 활용할 모양이었다.

벌처의 마인 게릴라를 의식해 옵저버토리를 건설, 옵저버를 뽑아내며 투게이트에서 꾸준히 병력을 뽑았다. 그러는 사이 지수는 스피드업 된 벌처 4기로 공격을 해왔다. 내 드라군 앞에 마인을 심으며 돌파를 시도했다. 드라군 2기와 질럿 1기로 콘트롤을 해가며 막았다. 드라군 1기가 마인에 폭사했지만 때마침 2기의 드라군이 추가되면서 쉽게 막을 수 있었다. ㅎㅎ

 지수의 초반 4벌처 게릴라를 막아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지만 나는 옵저버가 나올 때 까지는 진출을 못하고 묶여 있어야만 했다. 지난번 경기에서 마인에 당한 기억이 생생해 그대로 치고 나올 수가 없었다.
 
# 멀티에서 뒤져
 
물량으로 나서려면 많은 확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뽑아둔 셔틀을 이용해 11시 섬에 몰래 멀티를 했다. ㅎㅎ 지수도 요건 모를거야. 케이트를 계속 늘려갈 심산이었다.

그런 후 곧바로 앞마당 멀티를 시도했다. 헛! 그런데 넥서스가 소환되지를 않았다. 벌처의 마인이 밖혀 있는 모양이다. 파일론을 소환하고 캐논을 2개 지어 마인을 제거한 후 넥서스를 지으려 했다. 그런데 캐논이 완성되고 마인을 제거하자 마자 탱크의 포화 소리가 들렸다.

지수가 이미 내 앞마당 멀티 언덕에 시즈탱크 2기를 올려 놓고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옵저보로 확인을 하자 지수는 거기에 터렛까지 짓고 있었다. 이런, 지수가 멀티 견제까지 할줄을 꿈에도 몰랐다. T.T 눈물을 머금고 앞마당 멀티를 포기했다. 섬 멀티를 했으니 큰 염려는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런 안이한 생각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지수는 이미 앞마당 멀티를 씽씽 돌리고 있었다. 지난번 경기에서 정찰을 게을리 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는 생각에 옵저버를 꾸준히 뽑아 여기 저기 흩뿌려 놓았다. 지수의 본진 부근과 앞마당 언덕위에도 보냈다.

내가 섬 멀티를 했다고 느긋해 할 때 지수는 앞마당을 돌리며 앞서가고 있었다. 사실 프로토스가 테란과의 경기에서 테란과 동일한 멀티를 먹고서는 절대 못이긴다. 나중에 리플레이 파일을 돌려보고 안 사실이지만 지수는 이미 5시 섬멀티도 가져가고 있었다.

부랴 부랴 본진 앞에 있는 미네랄 멀티를 시도하며 8시 지역에 프루부 정찰을 보냈다. 하지만 정찰을 나간 프루브는 지수가 보낸 벌처에 사라졌다. 드라군 몇기를 보내봤지만 이번에는 지수의 벌처 부대가 막아왔다. 다행히 지수가 8시에 멀티를 하지 않았지만 여기 저기 벌처부대가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내 주력부대가 모여 있는 곳이 중앙에서 약간 위쪽인지라 지수의 벌처가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력부대로 지수의 입구를 틀어막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 핵에 섬멀티가 날아가다
 
경기가 초반을 넘기면서부터 정신이 없어진 모양이다. 지수가 다수의 벌쳐와 탱크로 치고 나올 때 한바탕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물량을 모아 나갔지만, 앞마당 멀티 견제를 당하고 미네랄 멀티를 하고 하는 와중에 그만 게이트웨이 늘리는 것을 깜빡했다.

여태까지 3개의 게이트만 돌아가고 있었다. 반면 지수는 본진에서 건설한 커멘드센터를 5시 섬으로 날리면서 팩토리를 5개로 늘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타게이트와 사이언스퍼실리티까지 지어놓고 있었다. 큰일이다 싶어 게이트웨이를 늘리려는 순간, 11시 섬멀티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신호가 왔다.

급히 화면을 돌려보니 이미 시즈탱크 2기가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포화를 날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셔틀에서는 고스트가 내리고 있었다. 헉! 핵이었다. 다행히 포톤캐논이 있어 첫번째 내린 고스트는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수의 셔틀에서는 고스트가 계속 내렸다. 결국 마지막으로 내린 고스트는 내 넥서스 위에 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쿠아앙∼’ 금쪽같은 확장기지가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 성급한 접전으로 맥없이 무너지다
 
‘쩝 해도 너무 하는군’ 핵공격을 당하고 나니 경기를 지속하고픈 마음이 사라졌다. 누구라도 핵공격을 당하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철저히 농락당한 것 같은 그 기분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T.T

처참한 심정을 억누르고 마음을 추스렸다. 그래도 지금 건설 중인 멀티가 또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동안 생산한 드라군과 질럿, 하이템플러 등으로 지수의 병력에 맞설 각오를 했다.

그 순간, 내 병력이 진을 치고 있는 2시 진영 앞 미네랄 멀티 위로 지수가 커멘드센터를 날렸다. 언덕위에 있는 탱크를 믿고 멀티를 밀어 부치려는 것 같았다. 드라군을 탱크의 포화가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 시켜 커멘드센터를 일점사 했다. 실수였다.

지수는 내 드라군이 커멘드센터를 공격하는 틈을 타서 진격해 왔다. 다수의 벌처가 앞장을 서고 뒤에서 탱크가 밀려왔다. 지수는 내 드라군의 시선을 커멘드센터로 돌린 후 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수는 그 순간에도 이어졌다. 병력을 뒤로 빼서 넓은 지역에서 싸웠어야 했다. 지수가 예상치 못한 공격을 해오는 바람에 나는 또 좁은 지역에 그것도 언덕에 시즈탱크가 자리를 잡고 있는 사지로 질럿과 드라군을 밀어넣고 있었다.

하이템플러의 사이오닉스톰도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내 병력은 거기서 전멸을 하고 말았다. 허탈했지만 내 본진으로 밀려드는 지수의 벌처와 탱크를 바라보며 GG를 칠 수 밖에 없었다
 
# 테란은 초반에 그대로 놔두면 절대 안돼요
 
“위치가 가까워 프로토스가 절대 불리했어요. 초반에 압박을 해줬어야 하는데 안하셨어요.” 경기가 끝난 후 지수는 프로토스가 테란을 상대로 초반에 괴롭혀 주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질럿이나 사업 드라군으로 끊임없이 입구를 두르려 주면서 테란이 마음 먹은대로 테크트리를 올리지 못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질책이었다.

또 뭐가 잘못이었는지를 묻자 지수는 “섬 멀티는 좋았어요. 미네랄 멀티도 빨리 했으면 좋았을 거예요”라며 칭찬을 해줬다. ㅎㅎ 그 말 한마디에 핵에 당해 처참해진 마음이 다소 풀리는 듯 했다. “차라리 캐리어로 가시지 그랬어요. 아니면 초반에 리버를 좀 쓰시던가…”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지수의 지적은 끝이 없었다. 역시 프로게이머를 상대로 초보가 덤비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였다.

‘여자 임요환’으로 통하는 얼짱 프로게이머 서지수에 대한 나의 도전을 이렇게 끝을 맺었다. 역시 프로게이머의 벽은 까마득하게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허접 플레이어에게도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해주는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언제도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를 달라는 부탁을 하고 지수와 헤어졌다. 다음 시즌에는 스타리그 본선 무대에서 지수를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김순기기자(김순기기자@전자신문)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