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임요환' 몸은 '조형기'
"필승전략 세우자" 좌충우돌
 
지난번 서지수와의 대결은 실수 투성이인 경기였다.

초반 정찰을 보냈던 프루브가 너무 쉽게 죽었고, 상대방 본진 부근으로 보냈던 드래군과 질럿이 쓸데 없이 시즈탱크 포화에 맞아 죽었다. 이후에도 금쪽같은 유닛들을 너무 쉽게 흘려 버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반면 서지수는 SCV로 내 진영을 샅샅이 정찰하더니 이후에는 스캔과 엔지니어링베이 등으로 끊임없이 살펴보며 내 상황에 맞춰 테크트리를 올려가고 있었다.
 
리플레이 파일 분석하며 패인 분석
한빛스타즈 숙소 찾아 새벽까지 강훈
 
서지수에게 ‘악∼’ 소리가 날 정도의 참패를 당하고 난 뒤 리플레이 파일을 노트북에 저장해 놓고 틈이 날 때마다 되돌려 보았다. 프로게이머라면 엄청난 연습량을 바탕으로 리플레이를 보지 않고도 대략의 상황을 그릴 수 있겠지만 초보에게는 리플레이만큼 훌륭한 선생님이 없다.

리플레이를 보면 자신이 무엇을 실수했는지, 언제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상대방이 약한 부분이 무엇이고 언제 공격을 했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리플레이를 통해 나와 상대방의 진행상황을 함께 비교해 보면 배울 점이 아주 많아서 더욱 좋다.

지수는 절대 서둘지 않았다. 배럭스와 2개의 서플라이디팟으로 입구를 막은 뒤 마린 1기만을 뽑은 상태에서 팩토리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앞마당 멀티로 띄워 보낼 커맨드센터 건설에 들어갔다. ‘원팩 더블’이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이런 지수의 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정찰 실패였다.

사실 지수가 앞마당에 멀티를 하고 SCV를 붙이는 순간이 나에게는 딱 한번 찾아온 기회였다. 그때까지 내가 생산한 유닛은 질럿 4기와 드라군 2기. 지수는 마린 1기와 탱크 2기뿐이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병력에서 우위를 점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지수가 앞마당에 멀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면 그 병력으로 최소한 앞마당으로 옮긴 커맨드센터를 들어올리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지수 진영 앞으로 모이던 내 드라군 1기와 질럿 1기가 언덕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시즈탱크의 포격에 사라졌다. 유닛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지수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었다.

입구를 막아놓고 멀티에 성공한 지수는 1개의 팩토리에서 탱크를 꾸준히 뽑으며 엔지니어링베이를 짓고 팩토리를 늘려나갔다. 내가 처음에 준비했던 셔틀이 나온 것이 바로 이 때였다. 셔틀을 생각하고도 초반에 질럿을 4기까지 뽑은 것부터가 앞뒤가 맞지 않는 실수였다. 아니 실수라기 보다는 무지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셔틀이 상대 본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터렛이 완성돼 있었고, 탱크가 자리를 잡고 수비태세를 갖춘 다음이었다. 지수는 내 테크트리를 훤히 들여다 보며 자신이 할일을 다 한 연후에 엔지니어링베이를 짓고 터렛을 건설하면서도 시간을 딱 맞춘 것이었다. 결국 애써 뽑은 셔틀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직접적인 패인은 여기에 있는 듯 했다.

이후부터 내게는 어영부영 흘러가는 시간이었고, 지수는 팩토리를 6개까지 늘려 대규모 병력을 모으는 시간이었다. 더 들여다 볼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전략이 필요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리플레이 파일을 수도 없이 되돌려 보며 답을 모색해 봤다.

우선 첫 정찰에 나선 프루브를 쉽게 죽이지 말았어야 했다. 좀 더 끈질기게 살아남아 정찰을 했더라면 지수가 ‘원팩더블’ 전략을 펼치기 껄끄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수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자신이 원하는 전략을 위한 수순을 착착 밟아나간 것과는 달리 나는 마음만 앞섰을 뿐 제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 날 경기처럼 해서는 배틀넷에서도 승수를 쌓기 어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실제로 요 며칠 배틀넷에서 테란 유저와 많은 경기를 하다보니 그저 손가는 대로 건물을 짓고 유닛을 뽑아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그런 것을 프로게이머와의 경기에서도 그렇게 했으니…, 쩝. 한숨이 절로 나왔다.

로스트템플에서 테란으로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대부분이 지수와 비슷한 전략을 들고 나왔다. 다만 지수는 한 수 접어준다는 생각으로 초반 조이기를 감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른 유저들은 처음부터 벌처의 스파이더마인과 시즈탱크로 내 진영의 입구를 조여버리는 플레이를 많이 했다. SCV를 데리고 와 터렛을 지어가며 시즈탱크 조이기를 당하니 돌파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겨우 찾은 방법이 내 병력을 셔틀로 나르는 것이었다. 조이기 라인을 피해 내 병력을 내려 놓은 후 상대의 빈집을 털자 의외로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병력이 많아야 했다. 아무래도 지수와의 재대결에서 지난번 경기에서처럼 처참하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물량을 지수보다 많이 뽑아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내겐 프로게이머인 지수에 맞설만한 전략이 너무 없다는 것. 아무래도 지수와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다른 프로게이머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 같다. 특히 로스트템플에서 대테란전을 위한 프로토스의 전략과 그에 맞는 빌드오더가 절실했다.

또 지수가 마음 놓고 자신이 원하는 테크트리를 올릴 수 없도록 초반에 괴롭혀 줄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지수의 경기를 봐오면서 느낀 점도 여성이라서 그런지 여기 저기 동시다발적인 견제를 당하면 당황하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에혀∼ 보고 들은 게 많아서 이론적으로 아는 것은 많지만 손이 안따라가니… 이걸 포기해 말어?
 
# 한빛스타즈 숙소에서 강훈
 
며칠째 밤잠을 설쳐가며 배틀넷을 들락거렸지만 실력이 그리 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혼자 힘으로 단기간에 실력을 쌓기가 힘들다고 판단, 한빛스타즈의 이재균 감독에게 SOS를 요청했다.

 이재균 감독은 올초 박정석과 변길섭 등 팀의 기둥이었던 선수들을 이적시키면서 선수층이 대폭 얇아진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지난 시즌 ‘온게임넷 스카이 프로리그’ 1차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명장이다. 될성부른 선수를 발굴해 스타플레이어로 키워나가는 그의 능력은 아주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음∼요즘 팀을 재정비 중이라 숙소가 어수선해서….” 평소 같으면 “네∼ 놀러오세요”라며 반기던 이 감독이 말꼬리를 흐렸다. ‘스카이 프로리그 1차라운드’ 우승 이후 다소 해이해진 선수들의 기강을 잡을 겸, 선수층을 좀 더 보강할 겸해서 팀을 정비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경을 써주기 힘들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일정을 되집어 보던 그는 “주말이면 가능할거예요”라며 내 일정을 묻는다.

“주말이면 어때요. 지도해 준다는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죠.ㅎㅎ”

사실 프로게임단 숙소에 놀러가도 선수들이며 연습생들은 모두 자기 연습하느라 바쁘다. 특히 중요한 대회라도 앞두고 있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내 사정이 너무도 급하지 않은가. 수줍음 때문인지 말이 거의 없는 박영민이 한빛팀에서는 거의 유일한 프로토스 유저다. 그를 좀 괴롭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혹시라도 영민이가 없으면 어쩌지? 도경이는 분당에 나가 있어 미리 연락을 해서 오라고 하지 않으면 없을 공산이 크다. 미리 연락을 해놓을까? 에이∼ 선수들 바쁘면 걍 이 감독에게 특별지도를 해달래야지∼ 이왕이면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선수들이 좋아할 만한 피자를 야참으로 사들고 한빛스타즈 숙소를 찾아갔다. 피자를 뇌물로 건네주고 빈자리 하나를 꿰찾다. 배틀넷에서 한판을 해보고 이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유닛을 쉬지 않고 생산하는 게 기본이예요. 1D,2D,3D,4D... 해보세요∼”

그 날 나는 완전히 생초보로 돌아가야만 했다. 머 프로게이머들이 보기에는 생초보나 다름이 없으니... “어떤 게임이든 그렇지만 스타도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그렇게 새벽까지 강훈련을 받은 나는 결국 이 감독에게서 전략과 빌드오더를 받을 수 있었다.

또 “이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라며 거드는 선수들로부터 여러가지 주문을 받기도 했다.

이제 남은 건 지수와 재대결을 하는 그 날까지 전략과 빌드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하는 일만 남았다. 앗! 이 순간에 갑자기 서지수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최근 프로게이머로 전업한 염선희가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ㅎㅎ
 
김순기기자(김순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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