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유머로 가득찬 공포물
 
지난해부터 매년 여름 개봉되는 ‘쓰리’ 시리즈는 한국 일본 홍콩의 대표 감독들이 공포를 주제로 찍은 40분 내외의 단편을 모은 것이다. 첫번째 작품 박찬욱 감독의 ‘몬스터’는 잔인한 유머로 가득 차 있다. 흡혈귀의 럭셔리한 식사장면으로 시작되는 ‘몬스터’의 도입부는 영화 촬영의 한 장면이다.

 류지호(이병헌 분)는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의 집은 촬영장 세트와 똑같다. 감독의 아내(강혜정 분)는 피아니스트다. 아직 그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예고 없이 정전이 되고 곧 누군가에 의해 의식을 잃는 감독. 그가 눈을 떴을 때 다른 얼굴과 크로스 커팅이 이어진다.

감독의 클로즈업 쇼트와 아내의 클로즈업 쇼트 그리고 프레임은 조금씩 확장되면서
미디엄 클로즈업, 미디엄, 롱 쇼트로 이어지는 교차편집은 감독의 당혹스러움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몬스터’의 주 공간은 영화촬영 세트다. 무대미술은 평온한 가정에 침입한 괴한(임원희 분)이 극한 상황으로 등장인물을 몰아가는 내러티브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허공의 수 많은 지점과 연결된 가는 선에 묶여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강혜정의 모습은 그 자체가 시각적으로 매우 충격적이다.

광각렌즈를 사용해서 밀폐된 실내를 일그러뜨리며 확장시키는 카메라와 빠른 속도로 광기에 사로잡혀 가는 인물들의 감정 상승곡선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연출의 솜씨는 너무나 능숙하다.

테러리스트는 류 감독의 작품에 모두 엑스트라로 출연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는 이번 범행을 위해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감독의 집을 찾아 왔다. 삶의 배수진을 친 그는 피아니스트인 감독의 아내 손가락들을 하나씩 도끼로 잘라가고 감독이 부인을 살리고 싶으면 소파 위에 묶여 있는 또 한 어린아이를 목 졸라 죽이라고 명령한다. 주제를 표출해 가는 박찬욱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눈여겨 보는 것이 좋다.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는 몽환적 상상력이 지배하는 공포 영화다. 서커스 단원인 쌍둥이 자매 교코와 쇼코 그리고 그녀들의 의붓 아버지 히키티의 삼각관계에 비극의 씨앗이 있다. 어린 시절 화재로 숨진 쇼코의 환상은 지금 성인이 된 교코의 삶을 지배한다. 소설가가 됐지만 교코는 악몽 속에서 항상 쇼코를 본다. 그녀의 상처가 시작된 지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박스’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선형적 질서 위에서 형성돼 있지 않다. 이야기는 파편화돼 흩어져 있으며 그것은 느리고 느린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몽환적 미술로 더욱 안개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17년만에 죽은 언니에게서 날아온 초대장. 언니의 이름으로 된 흰 장미꽃과 초대장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궤짝 안에 짐을 꾸겨 넣듯 집어넣은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미이케 다카시 영화는 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심리적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 새끼줄처럼 비틀린 내러티브 자체에서 발생되는 공포나 엽기적 장면의 연출이 아니라 영상 이미지의 마력적 흡인력으로 우리를 공포의 근원으로 끌고 간다. 이미지 공포다.

프루트 챈 감독의 ‘만두’는 젊어지는 마력적 효과를 갖고 있는 만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은밀하게 만두 가게를 찾아온 중년의 부인 칭, 만두를 제조하는 여자(베일링 분)는 30대로 보이지만 실제 자신의 나이는 할머니라고 밝힌다. 비밀은 만두에 있다. 만두 속의 재료는 낙태아다. 인간의 추악한 탐욕을 추적하는 크리스토퍼 도일의 뛰어난 카메라, 하얀 밀가루와 핏덩이 태아의 부엌을 디자인 한 이청만의 미술도 좋다.

칭은 남편(양가휘 분)이 젊은 여자들을 만나며 외도를 하자 젊어지겠다는 욕망으로 만두가게를 찾은 것이다.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 아이를 수술한 후유증으로 폭포처럼 하혈을 하며 죽은 딸, 딸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남편을 칼로 살해한 어머니의 비극은 젊어지려는 욕망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비극을 드러낸다.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온 만두 빚는 여자, 대륙에서 밀반입한 낙태아로 빚는 만두와 그것을 먹는 홍콩 사람들의 관계에는 1국 2체제인 중국과 홍콩의 미묘한 정치적 관계가 내포돼 있다.

근친 간의 태아일수록 회춘 효과가 좋다는 만두의 비밀은 충격적인 라스트신으로 이어진다. 출산을 앞두고 자신의 자궁 속으로 쇠꼬챙이를 찔러 넣는 칭의 잔혹함은, 우리 내면의 더러운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궁 밖으로 빠져나오는 붉은 핏덩이, 어린 아이의 형체를 또렷이 하고 있는 태아의 모습과, 태연하게 만두를 먹는 부인의 표정은 세계의 양면이다. 하얀 만두 속에 은은하게 비치는 붉은 만두의 속살은 외형적 세계의 평온함 속에 숨겨진 삶의 추악함을 상징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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