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즐기듯 방아쇠 당기며 '살인게임'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이 “부시,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일갈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이 대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콜럼바인 고교의 총기난사 사건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얼마나 무절제 하게 총기가 남용되고 있는 가를 고발한 이 다큐멘터리는 수류탄과 권총, 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2명의 학생이 자신들의 학교로 찾아가 수류탄을 던지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무차별로 총기를 난사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13명이 죽고 23명이 부상당했으며 두 학생의 자살로 마감된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엘리펀트’ 역시 같은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당시 상황을 재현할 수 없는 ‘볼링 포 콜럼버인’과는 다르게 극영화의 자유로움으로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물론 폴 라이언의 ‘홈 룸’이나 벤 코치오의 ‘제로 데이’처럼 같은 소재를 다룬 극영화들이 있지만 대부분 폭력성이나 선정성을 의도적으로 부각하는 데 공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왜 2명의 학생들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매스컴에서 가장 흔하게 접근했던 범행동기들, 학교 내의 왕따 현상이라든가, 히틀러 숭배, 인터넷을 통한 손쉬운 총기 구매 등을 선정적으로, 관습적으로 파헤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해 학생인 알렉스와 에릭의 학교 급우들의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너무나 햇빛이 투명하게 비치는 아름다운 가을 오후,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를 태우고 학교에 온 존은 형에게 전화를 해서 아버지를 데려가라고 부탁하고 자동차 키를 학교 서무실에 맡긴다.

늘 카메라를 들고 학교생활과 학생들을 촬영하는 것이 취미인 일라이는 데이트 중인 커플의 허락을 받은 뒤 분주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고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뚱뚱한 미셀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며 방과 후 묵묵히 도서실에서 일을 한다. 치어리더 3인방들은 꽃미남 운동선수 네이선을 보고 호들갑을 떨고 다이어트를 위해 식사 후 화장실에서 구토를 한다.

알렉스와 에릭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히틀러 시대를 TV로 보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소총이 배달되자 차고에서 성능 실험을 한다. 그리고 알몸으로 같이 샤워를 하다가 키스를 한 뒤 군용백에 총과 수류탄 등을 넣고 평화로운 학교를 다시 찾아간다.

마치 밥을 먹거나 TV를 보듯 일상적 담담함으로 그들은 학교 건물에 수류탄을 던지고 눈에 띄는 학생과 선생들을 향해 무표정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컴퓨터 게임에서 총을 쏘아 목표물을 쓰러트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6분 동안의 비극으로 13명이 살해됐고 23명이 부상당했으며 알렉스와 에릭은 자살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무표정하게 그들이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관객들의 시선 앞에 이 끔찍한 이야기를 아무런 설명 없이 풀어놓는다.

등장인물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카메라는 끊어지지 않고 따라간다. 스테디캠 롱테이크 쇼트로 찍혀진 이동 신들은, 대부분 인물의 등 뒤를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카메라는 앞으로 이동해서 그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프레임 안에서 지속적으로 움직이던 인물들은 어느 순간 슬로우 모션으로 느리게 움직이다가 다시 일상적 동작으로 돌아간다. 특히 알렉스가 피아노로 ‘엘리제를 위하여’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할 때의 신은 태풍의 눈처럼 거대한 폭력과 대비되면서 불안한 고요를 뛰어나게 형상화하는데 기여한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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