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백의 딸 유화는 고구려 시조 주몽을 낳아
동이족이 황하를 지배하면서 숭배했던 자연신
 
중국신화에서의 유명한 수신 하백(河伯)은 이름을 풍이(馮夷) 혹은 빙이(?夷)라고도 한다. 이름으로 미루어 그는 동이계 종족에서 숭배하던 신임을 알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주몽(朱蒙)의 외조부로 등장하고 있어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은 신이다. 이 신의 행적을 여러 자료들을 모아 이야기로 꾸며보면 다음과 같다.

치우와 황제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휘말리기를 꺼렸던 하백은 몸을 숨기고자 했다. 그는 도를 닦는다는 핑계로 깊이가 300길이나 된다는 종극연(從極淵)이라는 깊은 못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백은 본래 풍류를 즐기던 신이었다. 한적한 은신처에서 조용히 지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터라 이곳 저곳을 잠행하던 그는 낙수(洛水)의 여신 복비(宓妃)를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된다.
 
# 풍류를 좋아하는 하백
 
결혼 후에도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했던 하백은 여전히 여인들과 더불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풍류를 즐겼다. 그는 외출할 때 두 마리의 용이 끄는 아름다운 연꽃으로 장식한 수레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강의 지배자였으니 만큼 물고기 종류의 관원들을 거느렸다. 하백사자(河伯使者)인 악어, 하백종사(河伯從事)인 자라, 하백도사소리(河伯度事小吏)인 오징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하백이 행차할 때 곁에서 모셨으며 하백의 분부를 받들어 강물 속의 일들을 처리했다.

매일 밖으로만 다니는 남편 때문에 아내인 복비는 가슴 속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평소에 그녀는 강가를 거닐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는데 어느 날 그곳에서 천하 명궁 예(?)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하백은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예와 결투를 벌이게 됐다. 두 사람의 결투에서 하백은 예의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다쳤다. 결국 복비는 미안한 마음으로 하백에게 돌아왔으나 두 사람의 사이가 예전보다도 못하게 돼 버렸다. 하백은 아내의 부정을 겪고 난 후 딸들에게 엄격해져서 무척이나 완고한 아버지가 됐다.

아버지의 풍류적인 성품을 닮아 분방했던 하백의 딸들은 엄격한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강가에서 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맏딸 유화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解慕漱)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배고 말았다. 아내의 부정에 잇달은 딸의 방탕한 행실에 화가 난 하백은 그 길로 딸을 쫓아내고 말았다. 그녀는 나중에 동부여로 가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낳았다. 하백의 고구려 건국과 관련된 이 내용을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 해모수와 유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압록강 가에서 놀고 있는 하백의 세 딸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를 보게 됐다. 해모수가 다가가자 세 자매는 몸을 피하였다. 해모수가 요술로 맨 땅위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술상을 차려놓았더니 세 자매는 해모수의 짓 인줄 모르고 집에 들어와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 때 해모수가 갑자기 나타나자 세 자매는 달아났는데 큰 언니 유화만이 붙들렸다. 이 일을 알고 하백은 크게 노하여 해모수에게 따져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길래 감히 내 딸을 잡아 가두는가?”

“저는 천제의 아들로서 귀하의 집안과 혼인을 하고자 합니다.”

“그대가 천제의 아들이라면 무슨 신통한 재주가 있는가?”

“무엇이든지 시험해보소서”

그러자 하백이 먼저 연못의 잉어로 변했다. 이에 해모수가 수달로 변해 잉어를 잡으려고 했다. 다시 하백이 사슴으로 변하자 해모수는 승냥이로 변해 뒤쫓았고 하백이 꿩으로 변하자 해모수는 매로 변했다. 그제서야 하백은 해모수가 진짜 천제의 아들임을 알고 둘이 결혼식을 치르도록 허락했다.
 
# 동부여를 떠나 나라를 세운 주몽
 
그러나 해모수는 하룻밤을 지낸 뒤 유화를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버림 받은 유화를 보고 하백은 가문을 더럽혔다고 꾸짖은 뒤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라는 호숫가로 추방했다.

후일 유화는 동부여(東夫餘)의 금와왕(金蛙王)에게 발견돼 보호를 받고 아들 주몽을 낳게 된다. 주몽이 커가면서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자 금와왕의 아들들이 시기해 죽이려고 했다. 주몽은 친한 사람들과 함께 동부여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주몽 일행이 도망쳐 나와 엄체수(淹遞水)라는 강에 이르렀을 때 동부여의 군사들이 급히 뒤 쫓아왔다. 위기에 빠진 주몽은 강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나는 천제의 자손이자 하백의 외손자이다. 난을 피해 이곳에 이르렀으니 나를 불쌍히 여겨 건너갈 배와 다리를 달라.”

그러자 자라와 물고기가 나타나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주몽 일행은 무사히 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 나라를 세웠다.

우리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하백이 고구려 건국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만주에 남아있는 광개토대왕비에는 주몽의 어머니가 하백의 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하백은 은(殷)의 조상들이 다른 종족과 전쟁을 할 때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하백은 본래 황하의 신이었으므로 동이계 종족이 중원의 황하 유역을 지배했을 때 숭배했던 자연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설명>
하백:이름은 풍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여러 하천을 아우르고 평정하면서 나중에 하백이라 불리게 된다.
낙수의 신:광범위한 하천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낙수가 흐르는 특정한 지역만을 관리하는 수신.
해모수:천제인 제준과 희와의 아들. 해를 모는 자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하계에 내려와서 북부여를 세웠다.
유화:강의 신 하백과 낙수의 여신 복비 사이에 태어난 딸. 후에 주몽의 어머니가 된다.
주몽:천신의 하들인 해모수와 수신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고구려의 시조.
인어:낙수의 신이 다스리는 낙수에 살고 있으며, 반은 인간의 몸이고 반은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다.
만만:낙수가 흐르는 강산에 사는 짐승. 쥐의 몸에 자라의 머리를 하고 있다.
호체:낙수에 사는 짐승. 생김새는 돼지 같고 털은 흰 빛이다. 털의 길이가 비녀만 하고 끝은 검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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