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0리 길 강행군... 힘들땐 '게임이 보약'
 
‘끝없는 도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동해안과 민통선을 가로지르는 850km 도보대장정에 나선 ‘대한민국 문화원정대’가 7월 1일 경북 울진에 도착했다.

지난 6월 25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출발, 포항과 영덕을 거치며 100km 행군을 돌파한 날이었다. 149명의 대원들은(출발 당일 19명이 포기했다) 하루 평균 8시간 동안 28km를 걷는 강행군을 해오며서도 매일 저녁 하루를 정리하고 토론하거나 생일을 맞은 친구를 축하해 주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일정을 계속하고 있다.

백두팀 소속의 양주희(22·부산대 불어불문과)양은 “가장 힘든 일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문을 연다.“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정비를 하고 식사를 마치면 다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동하는 동안 내내 나 자신과 싸우고 이겨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을 부리며 왜 이곳에서 고생을 하나 후회를 하긴 하지만 그 역시도 다시 후회로 마감한다. 이곳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이 점점 소중하게 다가온다. 치열한 나 자신과의 전투와 반성 속에서 이겨낸 후에 맛보는 그 느낌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행군 1주일째로 접어들면서 그녀가 느낀 소감이다.

히말라야팀 윤현수(30, 광운대 컴퓨터공학과)군은 “이 세상에는 임자가 없다, 결국 도전하고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가져라, 세계를 안으로 품어라.

폭염이나 강추위 같은 어느 외부의 재난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큼 힘들진 않다는 원정대장님의 말씀은 눈물이 핑 돌만큼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며 “나도 굳게 굳게 마음에 새겨 한계를 즐기며 이번 원정대를 무사히 마치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며 자신을 대견해 한다. 다음은 윤현수군이 정리한 행군 일지의 일부다.

6월29일(원정 5일째)

어느새 원정에 나선지 5일째…, 25일 버스를 타고 호미곶으로 내려와 원정을 시작한 우리는 포항과 영덕을 거쳐 영해에 머무르고 있다. 욱신거리는 발을 붙잡고 이렇게 원정에 관한 소식을 전한다… T_T

오늘은 영덕에 소재한 강구초등학교에서 부터 영해동부분교까지 28km 구간을 행군, 총 100Km를 돌파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집에서도 아침마다 졸음과의 싸움이 힘겨웠는데, 오늘 일어난 시간은 오전 5시 30분. 학교를 일찍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조금 빨리 기상해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욱신거리는 발바닥의 통증을 억누르며 또다시 걸음을 옮긴다. 게로 유명한 영덕 땅이라 그런지 걸어가는 중간 중간에 보이는 건 게집 뿐이다… -_-;;;

한동안 통증을 억누르며 걷다가 조원들과 3.6.9 게임을 했다. 벌칙은 노래 아니면 혼자서 그 민망한 원정대 구호 외치기(이 원정대 구호의 민망함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없이 안타깝다). 어제부터 조원들끼리 도보 중에 오는 힘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었다.

원정 중에 하는 이 게임은 생각보다 굉장히 유용하다. 우선 게임을 하다보니 노는 즐거움이 있고,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발과 무릎에 오는 통증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나는 이 게임을 하면 어지간해서는 잘 걸리지 않는다.

이 게임을 주로 즐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ㅎㅎ. 걸린 사람한테 노래를 시키고, 제대로 못할 경우 원정대 구호를 시키는 그 재미란… ㅎㅎㅎ~

그렇게 게임을 하며 걷다가 또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개인적으로 특파원으로서의 책임을 맡으면서 가장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원정 중에 카메라를 내내 들고 다니는 것도 결코 편한 일은 못된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걷는 와중에 사진을 찍는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열심히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을 즐기며 나름대로 원정에서 오는 피로를 잊으려는 노력들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원정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잡혀버린듯 하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원정대를 고달프게 하는 최고의 강적이다. 이 정도 날씨에 아스팔트 도로 위를 하루 8시간씩 걷다 보면 정말로 인간 후라이가 되는 것 같다. 다들 누구 다리가 잘 익었나, 언제쯤 식탁에 올릴 수 있을까 하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힘들다보니 다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차츰 원초적이 되어간다. 우리 팀원들은 일명 ‘저급 단어 끝말 잇기’라는 게임을 하며 걷기도 한다. 왜 저급 단어인가 하면 말이 좀 안되거나 연결이 부자연스러워도 그냥 넘어가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나 심한가 하면 내가 ‘리튬’이라는 단어를 꺼냈더니 뒤에서 받은 은영이란 친구는 ‘튬소여의 모험’이라고 받는다. 그래도 넘어간다.이렇게 하면서도 게임을 멈출 수는 없다. 왜냐면 그만두면 힘이 드니까… T_T
 
김순기기자(김순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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