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혁명 부른 비폭력 '노란색의 캐릭터' | |
그리고 여기에 살을 붙여 주인공의 먹는 행위를 방해하는 적을 생각해 냈고 고스트라 이름 붙였다. 이 게임이 바로 ‘팩맨(Pac-Man)’이다. 진정한 의미의 게임 캐릭터를 최초로 탄생시킨, 이탈리아 요리에서 힌트를 얻은 처음이자 마지막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1980년에 발표됐으며 당시에 개발된 게임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게임계는 ‘디펜더’, ‘랠리 X(국내에서는 방구차로 유명), ‘미사일 커맨더’ 등도 인기를 끌었으나 ‘팩맨’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게임은 전 세계로 수출돼 아케이드 오락실을 점령했으며 휴대용 팩맨 게임기까지 개발, 게이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팩맨’의 원래 이름은 퍽맨(Puck-Man)이었다는 것. 남코와 공동 제작사 미드웨이는 이 이름이 욕설 ‘Fuck’을 연상시킨다고 판단해 ‘Pac-Man’으로 수정했다. 그리고 이들의 판단은 현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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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도, 디자인도 극도로 단순 | |
왔다 갔다 위로 아래로가 전부였지만 고스트의 포위를 헤쳐 나가는 전략적 재미와 전세를 역전시키는 파워 포인트, 약간의 순발력 등 ‘재미’의 요소를 골고루 갖췄다. 성공한 모든 게임이 지니고 있는 ‘단순하지만 미묘한 그 무엇’을 팩맨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게임은 대중적 성공 외에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극히 드물게 의도적으로 비폭력성을 추구하고 여성 유저에게도 어필했던 게임이었다. 팩맨은 맵의 점을 먹을 뿐 총이나 칼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도망치는 일에 급급하고 파워 포인트를 삼켰을 때만 고스트를 물리칠 수 있다. 고스트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중앙의 본거지로 소환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한다. 당시 게임들의 소재란 것이 핵전쟁과 전투, 살인 등 폭력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일대 혁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같은 비폭력적 성향은 게임에 무관심한 여성에게도 어필해 게이머층을 넓히는 일에도 기여했다. 주인공도, 적도 귀여운 모습이었고 조작이 단순해 어렵게만 느꼈던 게임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팩맨’은 80년대 초등학생 부모님들이 허락하는 유일한 게임이기도 했다(노란색의 휴대용 팩맨 게임기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없다면 게이머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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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의미의 게임 캐릭터 등장 | |
극도로 단순한 모습을 지녔으나 오히려 게이머들의 상상을 자극해 강한 개성을 가졌다. 또한 커다란 눈을 가진 귀여운 모습이지만 때로는 인정사정없는 공포를 준 고스트들도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이 고스트들은 빨간색, 파란색, 오렌지, 핑크색으로 정해져 있었고 각기 이름과 별명까지 부여받았다. 이름도 일본식과 미국식이 달라 이것을 모두 합치면 총 23개나 됐을 정도였다. ‘팩맨’의 인기는 게임계를 탈피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번졌으며 마침내 라이센스를 걸고 장난감, 도시락통, 노래, 광고, 각종 이벤트 등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게임의 캐릭터가 이처럼 폭넓게 문화 콘텐츠로 사용된 것은 처음이었고 진정한 의미의 게임 캐릭터가 등장한 신호탄이었다. ‘팩맨’의 영향으로 많은 게임 개발자와 제작사들은 게임의 주인공(캐릭터)도 미키 마우스처럼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향후 제작하는 게임에 캐릭터 개념을 삽입하기에 이르렀다. ‘팩맨’은 이소룡 같은 슈퍼 스타로 군림하며 미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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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게임에 지대한 영향 | |
먼저, 게임 기획자에게 게임의 주인공을 상품화되기 쉽도록 만들게 했다. 70년대를 통틀어 뚜렷한 개성을 가진 게임 캐릭터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980년 ‘팩맨’이 등장한 후부터 매력적이고 개성이 강한 주인공이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의 기획부터 상품의 요소를 지닌 캐릭터가 고려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요소로 부각돼 하나의 게임 플랫폼을 대표하는 위한 전략적 상품도 탄생했다. 바로 닌텐도의 마리오와 세가의 소닉이 이와 같은 전략적 캐릭터로 탄생해 각각 회사와 게임 플랫폼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러나 근래 들어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툼 레이더’의 여성 전사 라라 크로프트 경우는 의도한 바가 달랐기 때문에 위의 사례와는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팩맨’은 게임 플레이의 비폭력성과 단순함에서 오는 재미가 있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70년대 게임은 핵전쟁까지 소재로 삼을 정도로 심각하고 무거웠다. 전투와 전쟁은 게임의 매력적인 소재지만 필요조건은 아니다. 폭력적인 게임은 등급을 만들고 여성 게이머와 저연령층이 외면하게 한다. 하지만 ‘팩맨’은 그렇지 않았다. 플레이는 너무나 건전했고 피 한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게임 개발자들은 체스같은 퍼즐이 아니면서 비폭력적인 게임이 가능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마리오와 소닉도 이를 모방했다. 플레이의 단순함도 마찬가지다. 테트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팩맨’도 버튼 몇 개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108개의 키를 모두 외울 필요도 없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동시에 사용할 일도 없다. 탄창을 갈아 끼울 필요도 없었고 적을 조준하거나 부대를 지정할 필요도 없다. 단지 전후좌우로 도망만 치면 됐다. 여기에 미로로 된 맵에서 고스트를 현명하게 피하기 위한 약간의 두뇌 플레이만 추가된 것 뿐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조작과 결합된 소량의 전략적 요소가 바로 성공의 비결이었고 게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재미’였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게임들은 화려한 그래픽과 복잡한 게임 시스템, 광활한 스케일을 앞다퉈 자랑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게이머가 갈망하는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비견될 정도로 게임산업은 성장했지만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게임은 오히려 드물어지고 있다. 기술적으로나 시각적으로는 과거의 게임을 현재 게임과 비교하기 조차 민망하다. 그러나 ‘팩맨’이 지녔던 역사적 위치와 견줄만한 게임 캐릭터가 여전히 나타나지 않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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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기자(김성진기자@전자신문) |
- 기자명 김성진기자
- 입력 2004.07.0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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