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 뜻밖의 도움받아 전열 재정비하고 황제 공격
 
‘이대로 어이없이 지고 마는 건가…’

치우는 동쪽의 하늘을 원망스레 올려다보았다. 그 때였다. 동쪽 하늘로부터 검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구름은 놀라운 속도로 동쪽 하늘 저편으로부터 탁록의 벌판까지 밀어닥쳤다.

다시 보니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밤처럼 어두운 빛깔의 깃으로 무장한 새들의 무리였다. 소리개·새매·수리 등 날래고 사나운 새의 무리가 큰물이 땅 위를 뒤덮듯 빠른 속도로 탁록의 하늘 위를 뒤덮더니 굶주림과 상처로 제 정신을 잃은 황제의 동물 부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큰 동물들은 하늘로부터 날아오는 재빠른 새들의 공격을 받고 혼란에 빠졌다. 신기하게도 새들은 맹수들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사람이나 치우와 같은 큰 신들에 대해서는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 절로 알아서 피해갔다.
 
# 소호의 새떼, 맹수들만 집중 공격
 
“소호이신가…” 치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사로운 정에는 엄격하지만 죄 없는 생명들이 부질없이 소멸당하는 일만큼은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동쪽 바다 저 먼 곳에 새들의 나라를 세우고 그들의 왕이 된 큰 신 소호의 근엄하고도 흔들림 없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림이 없었다. 전쟁 전에 동맹을 하려고 찾아갔을 때 비록 치우를 꾸짖기는 했지만, 소호 역시 황제의 처사가 다소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치우와 황제가 벌이는 전쟁에 늘 주목하고 있었다. 치우가 잇달아 승리를 거두기에 황제의 자중에 이 싸움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물 부대가 치우군을 짓밟는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이것은 내버려둬도 좋은 싸움이 아니다.

그는 다른 것은 몰라도 무고한 목숨들이 굶주린 맹수들에게 짓밟히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빼어난 맹금(猛禽)의 무리를 탁록의 하늘로 띄웠던 것이다.

 맹수들의 공격을 받은 황제의 동물 부대는 재빠른 공격과 날렵한 새들의 사나움을 이기지 못하고 황제의 진영으로 대번에 물러났다. 그나마 훈련이 덜 된 맹수들은 놀란 나머지 진열을 흩트리고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일이 어찌 된 것인가…’ 황제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 동안, 판천에 소호의 사신인 보라매가 도착했다는 전언이 들려왔다. 보라매는 소호의 뜻을 담은 편지를 전하고 돌아갔다.

그 편지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큰 신들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대부분의 신들은 어떤 싸움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빠른 시일 내에 평화로운 종전(終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큰 신들은 다시 한 번 전쟁의 결과에 대한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같은 내용의 편지는 치우 진영에도 전해졌다. 말하자면, 그것은 전쟁에 동의하지 않는 신들이 황제와 치우 양쪽의 군대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던 것이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 맹수의 떼와는 달리 황제의 동물 부대가 흩어지는 것을 확인한 소호의 검은 새 무리는 황제와 치우에게 서신을 전하는 일을 마치자 탁록의 하늘을 뒤덮었던 것과 같이 빠르게 물러나 동쪽의 먼 바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네 번째 전투가 지나간 탁록의 하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맑고 환하게 빛났다.

소호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치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음 전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회의하는 약한 마음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소호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전투는 명백하게 치우군의 패배였다.

게다가 황제가 또 다시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감행할지도 두려웠다. 치우의 군대는 이미 지쳐가고 있었다. 아직도 막강하게 버티고 있는 황제의 대군을 맞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무척이나 절박한 문제였다.
 
# 삼묘의 묘민도 치우진영 합류
 
그 때였다. 진영 한쪽에서 커다란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치우는 무슨 일인가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사람의 몸에 겨드랑이에는 새의 날개를 단 삼묘(三苗)의 묘민(苗民)들이 달려와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언제든지 달려와 돕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황제군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묘민의 우두머리는 싱긋이 웃어 보이며 날렵하니 잘 벼려진 치우군의 칼 한 자루를 들어 가볍게 휘둘러 보였다. 묘민들은 하나같이 발이 빠르고 눈이 밝았으며 성질이 사납고 마음이 굳건해서 싸움에 임하면 물러나는 일이 없었다.

그처럼 용맹한 묘민들을 구원군으로 맞으니 치우군의 사기가 백배로 치솟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려의 백성들은 삼묘의 사람들을 맞아 환호성을 올렸다. 묘민들을 받아들여 다시금 사기가 올라간 치우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다음 싸움을 준비했다.

앞으로의 전황이 걱정되는 건 치우 만은 아니었다. 황제의 전력도 이미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다. 수적으로 우세하다고는 해도 치우군은 쇠와 구리로 중무장을 한 막강한 정예 부대였다.

게다가 전쟁이라면 꿈쩍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소호가 경고의 서신을 보내왔다. 전황은 황제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았다. 지금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어찌 됐든 수적인 우세를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황제는 전군을 발동시키기로 했다. 이번 싸움은 아마도 난전(亂戰)이 될 것이었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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