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잘 모르는 게임리그의 비밀(3)
 
게임중계에는 대본이 없다. 대본이 없이 방송을 하는 것은 흔히 '애드리브(ad-lib)'라고 한다. 그 말 그대로라면 게임중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애드리브'다.

 어떤 상황이 어떻게 발생할 지도 모르고, 각 상황상황을 얼마나 박진감 넘치게 묘사할 것인가가 캐스터와 해설자에게 주어진 역할이고 임무다 보니 정해진 대본 없이 두 시간이 넘는 게임 중계 내내 중계진은 긴장 속에서 방송을 하게 된다. 허나 아무리 긴장 속에서 방송을 한다해도 정해진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어휘를 쏟아내는 게임방송 중계에서 실수가 없을리 만무하다.

 몇 년 전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당시 테란의 양대 산맥이라는 임요환과 김대건이 붙었다. 아직 임요환이 '테란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기 전이다. 당시 저그를 잘 잡는 바이오닉 테란의 고수 임요환과 프로토스로부터 공포의 대상이라는 메카닉의 교과서 김대건은 테란의 부활을 꿈꾸는 많은 유저들의 로망이었다. 그 선의의 라이벌 두 선수가 붙었으니 장내는 흥분의 도가니탕, 아니 목욕탕이었다.

정: 아~ 두 테란의 거목이 맞붙습니다.

엄: 저 두 선수는 현재 테란의 양대 산맥으로서…어쩌구 저쩌구

정: 그렇군요, 역시 라이벌이 있어야 성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라이벌 구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역사와 전통이 쌓이는 거죠, 미 프로야구에도 있지 않습니까? 보스톤 ‘레드삭스’와 보스톤 ‘화이트삭스’ …

엄: 네, 그렇죠.

보스톤에는 ‘화이트삭스’란 팀이 없다. ‘화이트삭스’의 연고지는 시카고란다.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말하다 보면 잠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헌데 그것이 너무나 두드러지는 경우엔 난감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역시 몇 년 전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중요한 일전. 헌데 그 전날 필자는 집에서 비디오를 한편 봤다. 제목은 '와호장룡' 홍콩배우 주윤발과 서기가 대나무 위에서 경공술을 쓰며 흐느적 흐느적 날아다니는 시퀀스가 참 오랫동안 인상적으로 남았다. 생방송 5분전까지 필자는 해설자들과 그 영화에 대한 잡담을 하다 중계에 들어갔다.

정: 아~ 조정현 선수 대단합니다. 아주 조촐한 병력조합으로 절묘하게 경기를 풀어갑니다.

엄: 마린 몇 기, 메딕 몇 기, 탱크 한대로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 경기를 유리하게 풀어갑니다. 허허실실이라고나 할까요? 강력한 힘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아주 유연하게 상대의 흐름에 맞춰서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는 모습이예요.
이때, 필자의 머리에 갑자기 ‘와호장룡’의 한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다.

정: 아~ 조정현 선수 대나무예요 대나무! 태풍이 불면 소나무는 꺽어지지만 대나무는 이리저리 휘면서도 잘 안 꺾어지지 않습니까? 옛말에도 있지요, 대나무! 휘어질 지언정 꺾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조정현선수 대나무 테란으로 불러야겠어요.
그날 밤 게시판에는 난데없는 대나무 논쟁이 불붙었다.

'정캐스터, 대나무는 휘어질 지언정 꺾어지지 않는게 아니라 꺾어질 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 아닌가요?' (아이디 '이상야릇') '태풍이 불면 대나무는 안꺾인다 잖아요. 그 말이 맞는 거 같은데요?' (아이디 '너도밤나무테란')…

아뿔싸 명백한 필자의 실수였다. 괜히 전날 영화는 봐 가지고…, 캐스터의 말이 맞네 틀리네 리플에 리플이 달리는 사태를 수습하고자 사과의 글을 게제하려는 순간 그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 글을 읽고 필자는 쓰러지고 말았다.

"저 보길도 삽니다. 태풍불면 대나무 안 꺾어집니다. 휘어지긴 합디다."(아이디 '보길도섬소년')

이놈의 인기는 명언도 바꾼다.
 
게임캐스터(nouncer@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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