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백안저그’에서 ‘완성형 저그’로 도약
질레트 스타리그 최대 다크호스 ‘박성준’
 
‘질레트배 스타리그’가 술렁이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저그 박성준의 돌풍 때문이다.

저그 종족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홍진호와 조용호가 슬럼프이고 변은종 마저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박성준의 돌풍은 8강이 가려진 이번 ‘질레트 스타리그’ 최대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다.

“왜 이렇게 잘하냐구요? 정말 연습 많이 했어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전부 연습만 했죠.” 지난날 28일 4드론 깜짝 플레이로 제2의 임요환이라 불리는 한동욱을 제압한 후 8강에 안착했을 때 박성준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쥐고 큰 식당에 가서 맘 편하게 밥을 먹고 싶다”며 그간의 힘든 연습 과정도 내비쳤다.

실제로 그는 연습벌레다. 프로 게이머로 나서기 전 야구선수 출신의 경력 때문인지 고강도의 타이트한 훈련을 소화해 내고 이겨내는 것이 몸에 배었다. 소속 ‘POS’팀은 경제적으로나 선수 구성에서 가장 열악하다고 평가된 팀 중 하나.

박성준 선수는 물론 ‘POS’ 하태기 감독 역시 선수와 팀의 생존을 위한 돌파구는 끊임없는 연습 뿐이라 생각했다. 프로게이머로서 드물게 지난 겨울에는 체력 강화를 위한 지옥훈련도 받았다. 시즌 중이라도 늦잠은 없다. 최상의 바이오 리듬을 유지하게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등 취침과 기상 스케줄은 철저하게 지켜진다.

박성준이 속한 B조에서 8강 진출 예상 선수는 전태규와 한동욱이었다. 전태규는 노련함에서 한동욱은 임요환에 버금가는 전략과 전술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박성준은 이러한 선수를 거듭된 훈련의 힘으로 차례 차례 쓰러트렸다.

100개의 눈을 가진 ‘백안저그’에서 이제 그는 ‘완성형 저그’로 불린다. 쉴새없는 정찰과 빠른 타이밍으로 상대 선수의 약점을 파고 들던 스타일에서 지금은 저그 특유의 물량과 스피드, 감각적인 전술이 함께 어우러져 완벽에 가까운 에이리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스타리그 전문가들은 주저없이 말하고 있다. 임요환 세대에 이어 서지훈, 이윤열, 조용호 등 20세 초반 선수들이 e스포츠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면 앞으로는 박성준을 중심으로 한동욱, 이병민 등 현재 18세인 낭랑군단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이다.

8강이 결정된 후 박성준은 곧바로 우승을 향한 연습에 돌입했다. “자신 있어요. 두려운 선수가 없거든요. 어렵게 본선에 들었고 8강까지 이어온 만큼 이번에는 꼭 우승해서 챔피언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가 한 명이라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최연성’을 꼽는다.

가장 먼저 8강에 안착했고 강민, 박정석으로 대표되는 최강 프로토스 진영을 쑥밭으로 만들며 테란의 대표 주자로 부상한 최연성. 완성형 저그 박성준이 우승을 거머쥐고 완성형 저그의 표본을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꺽어야만 하는 상대다.

더불어 4강과 결승, 그리고 우승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양 선수의 맞대결이 이번 스타리그 최대 빅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반짝 선수는 절대로 되지 않겠어요. 스타리그 2연속 우승, 최초의 저그 우승, 세계 대회 우승 등 완성형 저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줄 계획입니다.” 저그의 음습한 둥지에서 햇빛을 받은 박성준이 개인의 영광을 넘어 스타리그의 재미까지 배가시키고 있다.
 
경기 시작 30분 전에 결심한 4드론 플레이
 
박성준에게는 가장 힘든 경기는 8강 진출을 위한 한동욱과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그동안 보여준 한동욱 선수의 플레이를 살펴 보면서 이전의 다른 선수와 달리 승부를 걸 만한 뾰족한 전술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 내는 물론 외부에서 적당한 상대를 찾아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지만 경기 직전까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물론 자신감도 최저 수준이었다.

일찌감치 4드론 플레이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에 지더라도 다분히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플레이를 펼치겠다는 박성준 선수 자신의 신념 때문에 망설였다.

당일 경기 시작 30분전. 박성준 선수는 하태기 감독에게 넌지시 말했다. “감독님! 저그의 완벽한 운영 능력을 보고 싶으세요. 아니면 짧고 깔끔한 승리를 기대하세요?”라고. 주어진 맵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저그 플레이로 재미와 함께 승부를 장기전으로 가져가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4드론 플레이로 바로 데시해 빠른 승부를 보는 것이 낫겠느냐는 물음이었다. 하 감독은 지그시 말했다. “깔끔한 승리…”라고.

스타리그 관계자와 팬들을 경악시킨 ‘3분37초 짜리 최단 승부’ 4드론 플레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임동식기자(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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