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고과 뛰어난 전략 앞세워 파죽지세
소수만 살아남은 유망군대 줄행랑
 
치우의 공공연한 전쟁 준비가 소문이 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황제는 서둘러 이 일을 조사하도록 명령했고, 결국 치우씨가 자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손을 부르르 떨며 방자한 치우의 행동에 화를 금할 수 없었지만, 황제는 다시 냉정을 찾았다. “이번에야말로 신농 일당을 철저히 제거해야지!” 쓴웃음을 지으며 황제는 곧 명령을 내렸다.

판천의 싸움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았던 호랑이·표범·곰·말곰과 같은 맹수들을 준비하도록 시키고 곤륜산에서 쉬고 있는 응룡도 다시 불러 들이도록 했다. 황제의 승전 이후로 세상이 잠시 안정되는 듯 보였던 것은 사실상 폭풍 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짧은 평화가 되어버렸다.
 
# 탁록에서 격돌한 치우와 유망 군대
 
그리고 드디어 모든 일의 때가 무르익었다. 잘 마름질된 철 갑옷과 구리 투구를 눌러쓴 치우의 군대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무서운 속도로 판천의 들판을 향해 진격했다.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소식은 천상의 신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지상의 인간들 사이에도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천지는 온통 이 소식으로 들끓었다.

새벽의 어스름을 뚫고 판천을 향해 진군하는 치우의 군대가 목격되었다. “이대로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황제는 치우가 판천으로 오는 길목에 자리한 탁록(?鹿)의 들판 쪽에 살고 있는 신하 유망(楡罔)에게 전령을 보내 나가서 치우와 맞서 싸우라고 명령했다.

치우 군의 맨 앞에는 구리빛의 깃발 위에 구리 이마에 삐죽삐죽한 수염, 튀어나온 긴 치아를 그려 넣은 치우의 얼굴 수 만개가 펄럭이고 있었고 그 뒤편으로 치우 형제들의 구리 투구가 빛나고 아홉 땅 구려의 사람들이 아홉 군대로 나뉘어 부지런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을 맞아 앞서 달려나온 유망의 군대와 판천에서 채 50여리를 앞둔 탁록의 들판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 치우 화공으로 기선제압
 
“치익-” 불화살에 붙인 불꽃이 피어오르는 소리가 시작의 소리를 대신했다. 그동안 익힌 화공(火工)을 뽐내며 치우편의 군대가 석궁에 매겨 쏘아 올린 불화살이 유망의 군대를 향해 날아갔다.

“방패로 막아라!” 지휘에 나선 유망의 명령에 따라 두발로 선 이들은 방패로 몸을 가렸으나 조금씩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공격!” 유망의 명령이 떨어지자 잠시 뒤로 물러서던 앞으로 나섰다.

 “우와아!” 땅이 흔들리는 요란한 함성과 함께 양쪽의 군대가 맞붙었다. 양군은 베고 찌르고 정신없이 걷어차고 막았다.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여기저기 쓰러진 군사들의 시체가 널부러졌다.

과연 치우의 군대는 듣던 대로 용맹하고 날렵했다. 유망 군의 서넛이 치우 군의 한 사람을 겨우 대적할 정도였다. 치우의 군대가 쏘아 올린 불화살은 백발백중했고 그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들판을 덮었다.

 치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연기의 힘을 빌어 자욱한 안개를 일으켰다. 황제의 군대는 두렵고도 혼란스러워 차츰 여기저기 도망가는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잠시 퇴각하라!” 전세를 살펴보던 유망의 명령이 들판 위에 메아리쳤다. 황제의 군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도망가니 “우-우!” 치우편의 군사들이 야유와 조롱의 고함을 질러댔다. 첫 번째 일전은 치우편의 승리였다.
 
# 상대 얕본 유망군 연속 퇴각
 
태고적부터 약속된 전쟁의 관례에 따라 양 편의 군사가 짤막한 휴식을 취한 것도 잠시,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자 유망군은 다시 둥둥 북소리를 울리며 대오를 지어 앞으로 나아왔다.

치우는 아홉 군대를 네 편으로 갈라 옆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고 72명의 형제들을 이끌고 자신이 직접 앞으로 나서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흩어진 안개 사이로 나타난 치우의 군대가 생각보다 그 수가 너무나 적자, 유망은 안심하고 적진 깊숙이 뛰어 들어 공격했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난 치우의 군대가 왼편과 오른편에서 뛰어들며 합세했다. 대오는 흩어지고 유망이 군사를 독려하는 목소리는 허공 중에서 맴돌았다.

 맹수의 얼굴이 새겨진 투구을 쓰고 일당백의 힘으로 칼과 창을 휘두르는 치우 형제들의 모습은 죽음의 신을 방불케했다. 할 수 없이 유망은 이번에도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수가 많은 것만을 믿고 무턱대고 공격했던 황제의 군대는 보기에도 민망한 수의 군사만이 남아 도망가거나 숨으면서 달아나기에 바빴다.

“와와-” 연이어서 승리를 올린 치우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 왔다. 이미 판천의 들은 눈앞에 있었고 종일 쉬지 않고 용감하게 싸운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치우는 술과 음식을 넉넉하게 내리고 탁록의 들판에서 하룻밤을 쉬도록 명령했다.

밤늦도록 전장에서의 활약을 얘기하는 병사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에 그렇게 탁록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가고 이튿날이 밝아 왔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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