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잘 모르는 게임리그의 비밀(2)
 
한국 프로게임리그는 ‘방송’에서 출발했다. ‘스타크래프트를 방송으로 하면 재미 있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 기법과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초창기 게임 중계에는 ‘작가’가 있었다.

 작가는 방송 프로그램의 형식을 구성하고 진행자가 할 말을 대본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필자는 영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MC가 있고 게스트가 있는 방송프로그램에서 더 재미있는 내용을 담기 위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선수들이 하는 게임 대전에 작가라니, 프로야구 중계에 작가가 대본을 쓰는 것 같은 넌센스다.

"작가가 아니라 기록원이 필요한 거 아냐?" "글쎄요… 그건 그런데…."

필자와 담당 PD와의 의논 끝에 작가를 없애고 캐스터와 해설자가 방송에서 이야기할 내용을 정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일을 하던 작가였다.

프로그램의 비중이 크던 작던 작가가 하던 일에서 잘린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녀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직능의 효율을 위한 일인걸.

담당 PD는 작가에게 그녀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했고, 작가는 그에 대해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였다나…,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마음 속으로 칼을 갈며 글을 썼고, 그녀가 쓴 시나리오가 공모에 당선, 3년전 쯤 한국을 깜짝 놀라게 한 흥행작이 되면서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다니. 인간사 새옹지마다. 남의 맘에 못 박지 말지어다.

필자는 아나운서 출신이다. 방송언어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편이다. 초창기엔 더 그랬다. 스타크래프트가 제아무리 외국게임이라 할지라도 '번역이 가능한 외국어'는 번역해서 우리말을 쓰는 것이 옳다. 방송 언어 교본에 원칙이 그렇게 되어있다.

"마린? 해병대 아냐, 해병대로 하고, 배럭스라니, 막사로 하자. 메딕은.. 위생병, 위생병 좋네" "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게 아냐, 어색한 거지 익숙해지면 괜찮다구"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유니트와 건물의 이름이 죄다 영어인 것이 영 떨떠름했던 필자는 그렇다고 그걸 한글로 바꾸자는 필자의 주장이 못마땅한 담당 PD와 설전을 펼쳤다. 좀처럼 결정을 못 내리던 한바탕 논란은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AD(조연출)의 말 한마디로 정리되었다. "형, 그럼 저글링은 개떼라고 하나요?" "……"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생각한다. 처음에 그 용어가 달리 불리웠었다면 지금쯤 사람들을 이런 중계에 흥분하고 있으리라고…

"지구 방위군의 임요환 선수 막사를 세 채로 늘리고 해병대와 위생병을 모읍니다. 우주 괴물의 홍진호 선수, 아! 개떼! 개떼 두 부대, 지구 방위군 기지로 공격, 해병대와 위생병 절묘한 움직임으로 막고 있습니다. 가시 두더지도 옵니다. 우주괴물의 기회, 지구방위군 위기!…"

처음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변하는 것이다
 
게임캐스터(nouncer@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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