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노리 이원술 사장
 
국내 게임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면 어김 없이 ‘손노리’가 등장한다. 지난 ’94년 개발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손노리 고정 팬을 만들어 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만 소프트맥스와 함께 국내 게임산업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던 손노리는 게임 환경이 PC게임에서 온라인게임 위주로 급변하면서 변화의 격랑에 휘말린다.

98년 개발팀에서 법인으로 거듭나며 승승장구하다 2001년 말에는 플래너스(당시 로커스홀딩스)에 합병된다. 사내 게임사업본부로 흡수된 모습이지만 이를 통해 재정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손노리 게임사업본부는 지난해 말 독립법인인 손노리로 회귀했다. 80여명에 달하던 인원은 손노리와 앤트리브소프트로 분화돼 각기 다른 법인으로 새출발하기에 이른다.

지난 93년 당시 개발팀이었던 손노리팀에 합류한 이원술 사장(31)의 게임에 대한 욕심과 열망이 배경이었다.
 
# 이상적인 게임 꿈꾸는 몽상가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들의 꿈은 ‘대박’을 터뜨려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손노리 이 사장의 성적은 별로다.

그가 10여년의 게임인생을 통틀어 만져본 가장 큰 돈은 플래너스와의 합병 당시 받았던 15억원 상당의 플래너스 주식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는 이 마저도 독립을 선택하면서 반납했다.

그는 이런 자신을 가리켜 ‘몽상가’라고 표현한다. 플래너스 게임사업본부로 있으면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게임은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었다. 일종의 자신을 찾기 위한 투자라고나 할까.

이사장은 “조직이 비대해지다 보니 원하는 게임을 개발하기가 어려웠다”고 분사 이유를 털어 놓는다. 조직의 일원으로 일을 하다 보니 게임성 보다는 수익성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했고, 그러다 보니 개발자들 스스로도 점차 월급쟁이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한꺼번에 여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가 힘들어진 것도 주된 이유였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신을 따르는 개발자들과 함께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새로운 손노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게임에 대한 애정이 만들어 낸 그의 두번째 꿈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 파격적인 변신은 스스로에 주는 자극
 
두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 사장은 헐렁한 노란색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 차림의 편할대로 편한 모습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헤어스타일에서 나타났다.

최근 들어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변화가 주변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돼버렸다. 플래너스 시절만해도 얌전하던 그의 헤어스타일은 분사 이후 파격적인 변신을 계속해 왔다.

한때는 덥수룩하게 길렀던 머리가 또 한때는 얼룩덜룩한 갈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여름을 맞아서인지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여기에 머리에 이마 양쪽으로 두줄기 금을 넣어 마치 힙합소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분사한 이후 이번이 4번째로 보여준 파격이다. 여기에 분사 이후부터 기르기 시작한 콧수염은 어느새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렸다.

 “환경이 바뀌면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마음도 바뀌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에게 있어 이같은 변화는 ‘스스로에게 주는 자극’이다. 잠시라도 나태해지려는 자신를 발견할 때나 뭔가 새로운 의지를 다질 때마다 자신을 향해 던지는 경고의 몸짓인 셈이다. 그 자신도 굳은 표정으로 “새로운 이원술이고 싶다”며 자못 진지하게 설명한다.

이같은 이사장의 각오는 “다시는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한때 잘나가는 게임개발사로 인정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들어온 투자를 받아 들이다 보니 결국은 게임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지켜나갈 수 없었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경계해야 할 것이 많은 모양이다.
 
# 좋은게임이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고 파
 
이 사장이 꿈꾸고 있는 게임세상은 한마디로 ‘좋은 게임이 인정받고, 좋은 게임이 성공을 거두는 풍토’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게임 같지도 않은 게임들이 대박을 치며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민다”며 게임성이 아닌 다른 외부적인 요건이 지배하는 국내 게임시장을 비판해 왔다. 또 자본의 논리가 개입되면서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게임만을 강요해온 환경에 대한 염증도 느껴왔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MMORPG는 만들지 않겠다”고 천명한다. MMORPG가 대세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은 개발자 이원술의 고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요즘 MMORPG가 아니면 대작게임으로 쳐주지도 않아요.그렇지만 모두가 다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의미없는 재원의 낭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이 사장에게 있어 최근 몇년간의 경험은 쓰디쓴 약이었다. 이른바 ‘대박 게임’을 내놓지 못한 개발사는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아픔을 맛보며 게임판에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분사를 하면서 ‘힘을 길러야 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사장은 이달 중에 성인들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캐주얼 게임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내년 여름에는 자신의 의지와 비전이 담긴 야심작도 내놓을 계획이다.

“MMORPG가 아니면 전부 캐주얼게임이라고 부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분위기와 풍토를 바꿀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사장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는 한마디로 말하기 힘들다.

다만 “게임이 발전하려면 다양한 장르가 활성화 돼야 한다”는 주장과 “MMORPG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게임성만 갖추면 성인유저들을 얼마든지 유입할 수 있다고 본다”는 말에서 ‘MMORPG는 아니라는 점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라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사장의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게임이 과연 MMPRPG가 아니더라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내년 여름이 기다려 진다.
 
김순기기자(soonkkim@etnews.co.kr)
저작권자 © 더게임스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