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옷과 구리 투구 위용 앞세워 황제에 도전
황제도 응룡과 맹수들 불러 모아 일전 채비
 
구려로 돌아오자 마자 치우는 아홉 땅마다 대장간을 하나씩 두었다.

오면서 채취한 구리와 철을 단련시켜 전쟁에 대비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도록 했다. 철로는 갑옷, 가지 창, 큰 활을 만들도록 했다.

구리를 녹여 투구와 방패와 도끼를 만들었다. 또 형제들의 일부를 황하 쪽으로 보내어 수시로 판천의 변화를 살피도록 했다.

72명의 형제들도 잇달아 대장간 일을 익혔다. 그들도 직접 옹호산(雍狐山)에서 좋은 무쇠를 채취해서는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라 괴수의 형상을 넣은 투구를 만들었다.

이들은 또한 좋은 칼과 방패, 가지 창을 만들었다. 방금 완성된 석궁을 들고 언덕 위에 올라 저 멀리 판천을 바라보는 치우의 얼굴에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 치우, 철과 구리로 무기 제작
 
치우의 이 공공연한 전쟁 준비가 소문이 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침 바람을 타고 세상을 주유하다가 황제의 궁으로 돌아가던 풍후(風后)도 우연히 동쪽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고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여름에만 열려야 할 웅산(熊山)의 굴이 겨울에도 열려 있다는 말을 듣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길이라 그렇지 않아도 불길한 조짐이 꺼림칙했던 풍후는 서둘러 황제에게로 돌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신중의 신 황제이시여! 치우씨가 지금 감히 당신께 반기를 들겠다고 전쟁 준비에 한창이라고 합니다. 지금 동쪽은 온통 불을 때는 연기가 자욱하게 오르고 있고 저 구려의 땅에서는 쉬지 않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합니다.”

황제는 서둘러 이 일을 조사하도록 명령했고, 결국 치우씨가 자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손을 부르르 떨며 방자한 치우의 행동에 화를 금할 수 없었지만, 황제는 다시 냉정을 찾았다.

“이쪽에서야말로 철저하게 준비해주지!” 쓴웃음을 지으며 황제는 곧 명령을 내렸다.

판천의 싸움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았던 호랑이·표범·곰·말곰과 같은 맹수들을 준비하도록 모래 사막 동편과 서편의 숙촉국(叔?國)·중용국(中容國)·위국(蔿國)·현고국(玄股國)·삼신국(三身國)·선민국(先民國) 등에게 미리 알려 두었다.

 곤륜산에서 쉬고 있는 응룡도 다시 불러 들이도록 했다. 황제의 누런 깃발이 판천을 덮던 그날의 승전 이후로 세상이 잠시 안정되는 듯 보였던 것은 사실상 폭풍 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짧은 평화가 되어버렸다.

이제 동쪽에서 치우씨를 비롯한 그의 혈맹들이 뚝딱이며 무기를 만드는 소리는 사방으로 점점 더 널리 울려 퍼져 황제의 귓가에까지 그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릴 지경에 이르렀고 도전에 대한 마땅한 응전의 준비로 황제가 있는 곳도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 흉수 시랑의 출연
 
미묘한 긴장과 흥분이 천지를 감돌고 있던 어느 날 부터 세상을 조금씩 술렁이게 하는 소문들도 돌기 시작했다.

치우와 염제의 전쟁이 있기 전에 세상에 나타났다던 흉수 시랑(?也狼)의 흰 꼬리를 봤다는 목격자가 점차 늘어났다.

귓부리가 흰 새 같기도 하고 쥐를 닮기도 한 동물이 판천의 동편에 자주 모습을 보였는데 틀림없이 전쟁을 몰고 오는 의제산(倚帝山)의 저여(狙如)였다.

 서쪽 어딘가에서 어떤 이가 고슴도치처럼 생긴 불꽃처럼 붉은 여(?)가 뛰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갑자기 돌림병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은 물론 들짐승과 날짐승의 주검도 발견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세상의 흉흉한 소문은 점점 더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일의 때가 무르익었다. 잘 마름질된 철 갑옷과 구리 투구를 눌러쓴 치우의 군대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무서운 속도로 판천의 들판을 향해 진격했다.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의 소식은 천상의 신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지상의 인간들 사이에도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천지는 온통 이 소식으로 들끓었다.

새벽의 어스름을 뚫고 판천을 향해 진군하는 치우의 군대가 목격되었다.

“이대로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황제는 치우가 판천으로 오는 길목에 자리한 탁록의 들판 쪽에 살고 있는 유망(楡罔)에게 전령을 보내 나가서 치우와 맞서 싸우라고 명령했다.
 
# 탁록의 들판에 다시 깔린 긴장감
 
치우 군의 맨 앞에는 구리빛의 깃발 위에 구리 이마에 삐죽삐죽한 수염, 튀어나온 긴 치아를 그려 넣은 치우의 얼굴 수 만개가 펄럭이고 있었고 그 뒤편으로 치우 형제들의 구리 투구가 빛나고 아홉 땅 구려의 사람들이 아홉 군대로 나뉘어 부지런히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을 맞아 앞서 달려나온 유망의 군대와 판천에서 채 50여리를 앞둔 탁록의 들판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침도 저녁도 아니건만 군대가 뿜어대는 열기가 닿았는지 하늘은 노을이 물든 것 마냥 붉은 빛이 퍼지고 있었다.

바람은 한 점 불지 않고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하늘에서 전쟁을 살피고 있는 구름 신의 주머니에서 솔솔 흩뿌려지는 작은 구름 조각들만이 무심히 흐르듯 대지 위를 지나며 가끔씩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유망이 이끄는 황제군의 수에 비하면 수적으로 열세에 있었지만 치우군의 용맹한 기운은 이를 뛰어 넘고도 남았다.

게다가 그저 천으로 기운 옷을 입은 황제의 군대와 달리 치우군이 입고 있는 철갑옷과 구리 투구의 위엄은 적군의 기세를 눌렀다. 긴장으로 팽팽해진 공기만이 거리를 두고 마주 서 있는 양편의 사이에서 한껏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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