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냄새 물씬... 가면 쓴 서부극
스타일리스트의 과욕이 화면 속도감 집착 불러
 
얀 쿠넹 감독의 데뷔작 ‘도베르만’은 독특한 스타일리스트의 탄생을 알려준 작품이다.

프랑스 영화라고 하면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심리적 깊이의 예술영화를 생각하던 관객들에게 MTV 뮤직비디오보다 더 빠른 속도감과 감각적 영상으로 놀라움을 주었다. 뤽 베송 이후 프랑스 영화의 할리우드화가 진행됐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얀 쿠넹이야말로 프랑스 영화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는 공공의 적이다. 그의 두 번째 작품 ‘블루베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다. ‘블루베리’는 이상한 서부극이다.

‘블루베리’의 원작은 1960년대 초에 나온 만화소설 ‘뫼비우스’다.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얀 쿠넹 감독은 ‘증오’로 반항아의 이미지를 쌓은 벵상 카셀에, 할리우드에서 줄리엣 루이스, 마이클 매드슨을 합류시킨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로 성장한 배우들이다. 벌써 캐스팅 자체가 삐딱한 비주류 냄새를 팍팍 풍긴다.

장르적으로 서부극은 선악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사악한 악당, 그에 맞서는 정의의 보안관. 사랑과 복수가 끼어들기도 하지만 기본 공식은 변함없다. 물론 권선징악을 그리는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이 선의 승리로 끝난다. 그러나 ‘블루베리’는 이상하다. 황야의 서부를 배경으로 전개되며 선악의 대결도 펼쳐지지만 그것을 서부극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서부는 하나의 장식적 트릭이다. 오히려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극에 가깝다.

사막의 마을에서 창녀와 밤을 보내다가 무법자 월리의 등장으로 창녀의 죽음을 지켜본 블루베리는 역시 월리에게 아버지를 잃은 마리아(줄리엣 루이스 분)처럼 월리에게 복수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외형적 줄거리다. 오히려 인디언의 주술적 행위나 심령치료 같은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감독은 비가시적 세계의 초월적 힘을 영상으로 드러내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에 공력을 집중한다. 테츠오 나가타의 카메라는 쉴새 없이 움직인다. 런닝타임 2시간에 이르는 ‘블루베리’에서 우리는 고정 쇼트를 찾기가 거의 힘들다. 크레인 쇼트나 스테디캠을 이용한 이동 쇼트들은, 얀 쿠넹 감독의 감각적 영상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지나치게 속도에 집착한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블루베리’는 한 스타일리스트의 과잉의욕이 빚은 참상이다. 인디언의 샤먼적 주술로 정신적 깊이를 위장하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이동 쇼트로 감각적 영상을 위장한다. 본질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형식의 추악함만 남은 영화, 그것이 블루베리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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