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 ‘지옥’ 다녀온 CEO
콘솔 온라인으로 ‘담금질’
 
그는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인터뷰 내내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판타그램 이상윤 사장(33). ‘엔씨소프트와의 짧은 동거’를 끝낸 그는 지금 다시금 힘겨운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다.

인수합병과 독립. 그에게 지난 1년6개월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었다. 숨가쁜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깊은 담배 연기가 허공에 퍼졌다.

하지만 그는 곧 멋적은 웃음을 되찾곤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직접 북미시장에 배급키로 한 ‘킹덤언더파이어-더 크루세이더즈’ 이야기가 나올 때면 더욱 그랬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게임개발사가 되겠다는 꿈도 조심스럽게 되새겼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잖아요.” 그는 한결 성숙한 모습이었다.


# 1년6개월만의 조우

이 사장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년6개월 전이다. 엔씨소프트와 한참 판타그램 인수협상을 벌이던 때였다. 그는 기자에게 “잘 될까요?”라는 질문을 연발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엔씨소프트와 빅딜’을 전격 발표했다.

“돌이켜보면 참 급박했어요. 인수합병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당시 회사 재정 상태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엔씨소프트에 인수된 뒤 그는 온라인게임 ‘샤이닝로어’와 X박스용 게임 ‘크루세이더
즈’ 개발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그의 ‘엔씨 드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와 함께 한 직원들이 하나 둘 떠났고, 게임 개발도 지지부진했다. 급기야 온라인게임 ‘샤이닝로어’ 서비스도 중단됐다.
“엔씨소프트 경영진과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은 좌절 그 자체였어요.

이대로 가다간 판타그램은 공중분해될 것이 뻔했어요. 일본과 미국지사가 이미 없어졌고, ‘크루세이더즈’마저 개발을 중단해야 할 분위기였으니까요. 엔씨로부터의 분리는 판타그램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탈출구였어요.”


# 4년전으로 돌아가다

이 사장이 이끄는 판타그램은 참 초라해졌다. 한 때 250명에 달하던 직원은 30여명으로 줄었다. 사무실도 200여평 남짓한 역삼동 인텔리전트 빌딩에서 이제 30여평의 양재동 낡은 건물로 바뀌었다. 새 보금자리가 4년전 둥지를 튼 양재동 그 건물이라는 것이 더욱 감회에 젖게 했다.

“따지고 보면 4년전으로 그대로 돌아간 셈이죠. PC게임 ‘킹덤언더파이어’를 개발하던 당시와 환경이 거의 흡사하니까요. 달라진 것은 이제 ‘킹덤언더파이어’의 2탄격인 ‘크루세이더즈’를 개발하는 것이랄까.”
그는 판타그램 살리기에 동참한 직원들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지난해 말 엔씨로부터 독립할 당시, 그에게 남은 것은 미완의 ‘크루세이더즈’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가시밭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묵묵히 저를 따라 줬어요. 지금까지 ‘크루세이더즈’에 쏟아부은 땀과 열정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일 거에요.”


# 새 희망 ‘크루세이더즈’

그는 요즘 물에 빠졌다 살아온 사람과 같았다. 독립은 했지만 막막하기 그지없던 그에게 세계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MS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희망 ‘크루세이더즈’를 MS가 배급키로한 것은 세계적인 뉴스였다.

“MS가 독점 배급(세컨드파티)계약을 맺은 것은 세가, 테크모에 이어 판타그램이 세번째입니다. MS가 얼마나 ‘크루세이더즈’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사실 MS는 AA급 이상 타이틀이 아니면 독점 배급을 하지 않는다. 판타그램이 MS와 세컨드파티 계약을 맺기까지는 46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다. 최근 MS가 기자회견까지 열어 ‘크루세이더즈 판권 계약’을 전세계 홍보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크루세이더즈’는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이 압권이에요. 글래디에이터, 반지의 제왕 등과 같은 영화를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놓았어요. 액션과 전략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것도 색다른 맛을 선사할 겁니다.”

그는 오는 9월께 출시할 ‘크루세이더즈’ 이야기로 한참 신이 났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현재 목표는 50만장 판매지만 이를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유럽지역 배급권을 놓고 비벤디, 아이도스, 유비아이 등 내로라하는 퍼블리셔가 관심을 가질 정도니까요.”


# 콘솔 온라인으로 ‘승부수’

다시 판타그램 이야기로 돌아오자 그는 또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판타그램이 나아갈 길에 대해 그는 비교적 명확한 답을 갖고 있었다.

“당장은 게임 개발에만 전념할 것입니다. 콘솔 기반 온라인게임 말입니다. ‘크루세이더즈’가 출시되자 마자 새로 개발중인 콘솔 타이틀 출시 일정도 발표할 예정이에요. PC기반 온라인게임은 아마 그 이후가 될 것 같아요.”

그는 한국 업체에 불모지와 다름없는 콘솔 온라인게임에 유독 자심감을 보였다. 이미 ‘크루세이더즈’가 X박스 라이브용으로 출시될 예정이라 그의 말엔 더욱 무게가 실렸다. 차기작으로는 2002년부터 개발해온 ‘스트라이던트’와 현재 새로 구상중인 게임 가운데 어떤 것으로 할 지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홀로서기 ‘자신만만’

“이제 다시는 다른 기업과의 인수합병은 없을 거에요.”
CJ그룹과 합작 불발, 엔씨소프트와 결별 등 2차례의 혹독한 시련을 겪었기 때문일까. 그는 이제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판타그램 스스로 홀로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값비싼 수험료를 치렀다고 봐요. 그 대신 게임 개발은 물론 회사 경영까지 값진 경험을 얻었어요. 비록 4년전 모습과 비슷하지만 지금의 판타그램이 4년전과 다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에요.”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샤이닝로어’의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샤이닝로어’가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은 가슴에 사무쳐요. 150억원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것도 그것이지만 4년간 땀과 영혼을 불어넣은 게임이거든요. 욕심을 부리면 그 만큼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어요. 작지만 강한 판타그램은 그 교훈 위에 뿌리를 내릴 거에요. 비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지잖아요.”
 
장지영기자(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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