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입구에 천문 설치해 인간, 귀신들의 출입 막아
황제의 독재에 대한 인간과 신들의 불만도 높아져
 
황제가 판천으로 달려와 염제의 기세를 누르고 자신의 깃발을 꽂은 이후로 인간들이 사는 땅 위의 나라들은 물론 신들이 사는 하늘 위도 차츰차츰 그 방향을 달리해 돌아갔다. 혼란스러운 것도 하나의 질서인 듯 흐르는 그대로 맡겨 두면서 보듬기만 하던 염제와는 달랐다. 황제는 그 모든 것들이 제멋대로인 것으로만 보였고 끝없이 돌보아줘야만 하는 상황이 매우 불편하고 성가시게 보였다. “그 중에서도 인정 많은 염제가 아껴 주었던 인간들은 짧은 지혜가 조금 있다고 해서 우리 신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려고 하니 이것이 될 법한 일인가?” 사막 너머의 범접할 수 없는 나라, 헌원국에서 자란 황제가 보기에, 미약하고 우둔한 인간들이 신들의 영역을 넘어오기를 예사로 여기고 만물의 으뜸으로 자신하며 우쭐거리는 꼴은 무척이나 마뜩찮은 일이었다.

# 하늘 길에 문 달고 문지기 보내

무엇보다도 보잘 것 없는 인간들에게 신성한 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불 다루는 법을 함부로 알려 준 것을 성급하고 섣부른 조처였다고 황제는 생각했다. 불의 혜택을 만물과 함께 누리겠다고 염제에게 약속했던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 제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짐승들을 불로 내쫓는 인간들에게는 불과 같은 신성한 힘이 아니라 다른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황제는 우선 인간들에게 땅을 나누고 마을을 만들어 살게 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자 갈수록 사람들은 서로 땅을 가지려고 싸우느라 산으로 들로 내어 달릴 시간조차 없게 되었다. 이 일로 사람들이 몰려 와서 불평을 하자 이번에는 집집마다 문을 만들어 달고 밤이면 딱다기를 쳐서 남을 경계하는 일을 알려 주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문을 내어 달고 빗장을 걸면서 서로를 의심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그 밖에도 부엌을 만들도록 한 것, 그릇을 만들어 음식을 담아 먹도록 한 것 등등 황제가 가르쳐준 일들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느라 점점 더 바빠져서 신들을 만나러 오는 일도 줄어들었다.

땅 위의 세상에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하늘 위의 세상에도 그간 품어왔던 포부를 펼쳐 보였다. 황제가 무엇보다도 맨 처음에 한 일은 바로 건목(建木)을 비롯한 하늘 길에도 문을 달아 건 것이었다. 건목은 하늘로 통하는 높다란 나무였다. “이제 여기 하늘 위, 우리 신들의 세계에 신령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감히 들어 올 수 없어. 인간이나 귀신처럼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함부로 그 신성한 비밀을 캘 수 없도록 곳곳의 천문(天門)을 닫아걸도록 해야 해.” 이렇게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그는 하늘 길로 통하는 곳곳의 나무 아래, 높은 산의 꼭대기, 깊은 산의 동굴은 물론 깊숙한 땅 밑과 무덤에 문지기를 보내어 지킬 것을 명했다.

# 도깨비 · 귀신 · 신들도 불평 늘어

당연히 이 소식은 하늘 위와 땅 위 모두를 흔들어 놓았다. 황제의 새로운 가르침으로 바빴던 사람들은 잠시 아연실색했다가, 곧 우르르 몰려가서 신들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 일에 가장 반발한 무리는 도깨비와 귀신들이었다. 사실 이 길을 가장 자주 오가던 것은 사람도 신도 아닌 도깨비와 귀신들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불만이었다. 어쨌든 이후부터 도깨비와 귀신들은 인간 세상에 나가 놀다가 새벽닭이 울면 황급히 돌아와야만 했다.

하늘과 땅의 길을 가로막은 것이 불편하기는 인간이나 도깨비, 귀신들 뿐 아니라 신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상에 내려가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고 또 그들로부터 제사도 받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일이 이렇게 번거롭게 되다니!

벌써부터 신들 사이에서 염제를 그리워하는 소리들이 생겨났다. 더군다나 이번의 일은 늘 그랬듯이 함께 모여 의논해 보지도 않고 황제가 홀로 벌였던 것이어서 그것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이런 중대한 일을 어떻게 혼자 결정할 수가 있지? 앞으로도 이러면 곤란하겠는 걸?” “그러게 말야, 염제가 있을 때는 늘 모든 일을 함께 얘기하고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꼭 심부름꾼을 보내어 물어보기라도 했었잖아?” “인간을 밀어내는 것은 좋지만 말야. 이거 어째 우리도 소외당하는 기분이 드는 걸?” 마침내 사방에서 수군대는 소리들이 바람 신의 발에 묻혀 황제의 귀에도 닿게 되었다. 도깨비, 귀신들의 불평도 전해졌다. 일이 이쯤 되자, 아무리 황제라도 한번쯤은 천지의 신명들을 모두 모이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한번은 필요한 일인 셈이기도 했다. 판천의 전쟁 이후로 아직 공식적으로 신들에게 인사를 한 적도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태산(泰山)에서의 회합(會合)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임이 탁록의 전쟁을 불러오는 작은 빌미가 되었음은 그날의 일들을 얘기하게 되면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신들에게 인상적이었던 이 때의 모임은 특히나 탁록의 들판에서 황제와 겨루었던 또 다른 주인공, 치우에게는 더구나 잊지 못할 날이었던 것이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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