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군, 표범·수리 앞세워 염제군 중원에서 밀어내
 
염제의 말년,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고 있었다.

동물 신들의 일그러진 천성은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하늘 위로나 땅 아래로나 무람없이 불쑥 불쑥 얼굴을 들이밀어 신과 인간과의 경계는 흐려졌다. 이처럼 어지러운 세상을 그저 그렇게 돌아가도록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이 혼란을 바로잡아야만 했다. 절실했다, 새로운 질서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또 다른 질서가! 어차피 전쟁의 조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황제는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황제는 곤륜의 서쪽과 동쪽, 사막이 둘러싸고 있는 서쪽 산의 신들, 그 나라와 종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염제에게 오늘의 혼란을 초래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서쪽 땅의 신들과 나라와 종족들,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의지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사실이었고 그러한 사실의 배후에 천성이 무른 염제의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전쟁은 세상의 어지러움과 포악함을 다스리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 신들의 질서 지키기 위해 칼 빼든 황제

황제는 나무와 풀이 나지 않는 대신 옥돌과 차돌과 황금과 웅황이 많이 나는 산에서 그러한 돌들을 그러모아 무기로 삼고, 거친 들판에 넘치는 곰이며 말곰이며 이리며 표범같은 맹수들을 길들여 길라잡이로 앞장세우고 맑은 하늘이 어둑하도록 사나운 수리며 할새며 매며 소리개를 동원하였다. 황제의 나라 헌원국을 상징하는, 꼬리를 머리 위로 엇갈린 뱀의 표지가 그려진 깃발이 스무 남은 개의 산 위에 일제히 올랐다. “와- 와-” 수천인지 수만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곤륜의 기슭을 뒤덮은 군사들이 우렁우렁한 함성을 질렀다.

황제는 누런 옷자락을 펄럭이며 하루에 1000리를 간다는 말의 고삐를 쥐고 하늘을 나는 수레 위에 선뜻 올라서서 그 팔을 들었다. 순식간에 봄밤의 살얼음같은 정적이 나부끼는 누런 깃발 아래로 내려앉았다. 황제는 4개의 얼굴로 곤륜산 아래 구름처럼 모여든 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4개의 입을 열어 자신을 우러러보고 있는 군사들을 향해 엄숙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인간들의 혼란으로부터 신들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신성한 전쟁을 수행할 것이다. 자, 판천의 들판을 향해 전진하라.”
곤륜에서 판천까지는 가까운 길이 아니었지만, 사기충천한 곤륜의 군대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단숨에 판천까지 밀어닥쳤다. 모래 먼지를 채 떨어내지도 않은 곰과 말곰과 이리와 표범떼가 판천의 들판을 뒤덮었고 사납기 그지없는 수리와 할새와 매와 소리개들이 그 하늘을 가득 메웠다.


# 호미와 쟁기로 맞선 염제의 군대

곳곳에서 일어나는 가뭄이며 홍수며 날뛰는 자연신들을 진정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염제는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고 판천으로 달려갔다. 판천의 들판 가득 누런빛으로 휘날리는 깃발들을 보고서야 염제는 그것이 저 먼 서쪽 땅의 헌원의 군대임을 알아보았다. “서쪽 땅의 헌원이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대의 분노와 그대의 군대를 일으켰는가? ” “땅 위의 모든 인간들의 보호자인 염제여! 지금 그대는 천하를 다스릴 능력이 없다. 나 황제가 서쪽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염제는 황제의 추궁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사람들을 아끼는 그 자신의 마음이 그들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고,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징조를 막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천하를 다스리고 판천을 지키는 임무는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큰 신들이 함께 모여서 결정한 일이었다. 염제는 판천의 높은 언덕에서 하늘에 닿을 정도로 봉화불을 높이 피워 올렸다. 판천 땅의 위협을 하늘과 땅과 사방의 신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염제의 군대는 산비탈과 숲 언저리에서 화전(火田)을 일구던 농부들이었고, 그들의 무기는 밭을 갈고 곡식을 베던 호미며 쟁기며 낫과 같은 농기구였다. 거칠고 사나운 들짐승과 날짐승을 앞세우고 날카로운 무기와 발빠른 말과 신기한 기구들로 무장된 황제의 군대를 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믿어마지 않는 자애로운 신 염제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되지도 않는 싸움을 하면서 더러는 다치고 더러는 죽고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받들어 모신 그 신과 그 신이 지키려는 판천의 들판에 끝까지 남았다. 쉽게 무너질 줄 알았던 염제의 군대는 좀처럼 판천을 내어주지 않았다. 다쳐도 죽어도 물러서지 않는 염제의 군대 앞에서, 황제군은 먼 길을 오느라 지친 체력을 쉴 새도 없이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싸움은 밤낮 없이 이어졌고 크게 3차례나 벌어졌다. 3번의 격전을 치루고 나서야 황제의 군대는 염제와 그의 군대, 정확히 말하면 농사밖에 모르는 그의 백성들을 판천 들판 남쪽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판천의 언덕에 높이 치솟은 불꽃으로 판천의 위험을 알고 하늘과 땅 사이의 많은 신들이 달려왔을 때, 판천의 들판 위를 뒤덮고 있는 것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붉은 염제의 깃발이 아니라 사막의 모래바람 같은 황제의 누런 깃발이었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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