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의 전설 13년 만에 '컴백 홈'
 
‘전설’을 만났다.
한국인 최초의 블리자드 수석 디자이너 이장욱씨(37). ‘디아블로2 확장팩’ 개발자로 잘 알려진 그를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번의 고사 끝에 그를 만났다. ‘디아블로2’의 열혈팬인 기자로서 그와 만남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아닐 수 없었다.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의 첫 만남. 운동을 막 끝낸 그가 운동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 차림으로 사진촬영에 임해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제없다”는 대답에 그는 매우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청담동 노상카페에서 2시간 남짓의 인터뷰. 개인적인 궁금증까지 마구 쏟아낸 인터뷰는 마치 ‘스타와 팬의 만남’처럼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는 진지했다. 어떤 질문이든 꼼꼼하게 설명하는 그에게서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순박함이 베어났다.

“색다른 온라인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 제이씨엔터테인먼트 개발 이사 자리를 사임한 그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중이었다.

# 게임명가를 누비다
그의 이력은 화려했다.
그는 추계예술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 길에 올라 워싱턴대 서양학과, 아카데미 오브 아트칼리지에서 일러스트와 3차원 그래픽을 전공했다.
96년부터 디즈니 컨셉 디자이너로 일했고, 블리자드에 입사하기전에는 SNK와 3DO 등 유수 게임업체에서 경력을 쌓았다.

“게임업체와 처음 인연은 97년 SNK에서 시작됐습니다. 아케이드 게임 ‘사무라이 쇼다운’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SNK USA에서는 ‘사무라이 쇼다운’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으로 컨버팅하려고 했거든요. 아케이드 게임의 2D 그래픽을 3D 그래픽으로 전환하는 일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죠.”
99년 3DO로 옮기면서 ‘배틀탱크’ ‘워젯’ 등 여러가지 콘솔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그리고 2001년 블리자드로 옮기면서 그는 그래픽부문 총책임자인 아트 디렉트의 오른팔격인 ‘리드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재미있는 과거도 있었다. 추계예술대 재학 당시 A10이라는 록그룹에서 보컬과 키보드 주자로 활동했고, 고교시절에는 인기그룹 클론의 멤버인 강원래와 구준엽씨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했다.

# ‘디아블로3’ 나온다
그는 귀가 쏠깃해지는 사실들도 확인해줬다. 그 가운데 블리자드가 ‘디아블로3’를 개발한다는 것은 빅 뉴스였다. 그동안 국내외 언론에서 ‘디아블로3’ 개발과 관련한 추측 기사가 남발했지만 직접 개발에 투입된 당사자가 확인해주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저는 ‘디아블로2 확장팩’ 개발에는 뒤늦게 투입됐어요. 그래서 주요 캐릭터 디자인보다는 배경 그래픽 작업을 주로 맡았죠. 하지만 ‘디아블로3’ 개발은 달랐죠. 캐릭터 디자인은 물론 모델링, 배경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전부문에 투입됐어요. 아마 디아블로3는 내년쯤 출시될 거에요.”

지난해 블리자드를 떠나기 직전 ‘디아블로3’에 등장한 캐릭터로 ‘늑대인간’을 디자인했다는 그는 내년 출시될 ‘디아블로3’에 그 캐릭터가 담길 지 무척 궁금해했다.

# 한국으로 돌아오다
지난해 6월 그는 13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블리자드가 제시한 미국 영주권, 고액 연봉을 포기하며 제이씨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트면서 화제를 모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급부상한 한국 온라인게임에 대해 무척 매력을 느꼈어요. 잘 하면 세계적인 온라인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는 각오도 있었고요.”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개발자들이 제이씨엔터테인먼트에 구름처럼 몰려왔다.
“한국 개발자들은 상당한 장인정신을 갖고 있었어요. 급여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 개발자와는 차원이 달랐죠. 이 정도 열의면 세계적인 개발자로 성장할 자질은 충분하다고 봐요.”
그러나 그는 한국 개발자들의 보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마인드가 아쉽다고 꼬집었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결국 자기만의 독특한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 문화적 차이인 것 같아요. 게임도 그렇잖아요. 미국 게임은 유저의 자유도가 매우 높은 반면 한국 게임은 개발자가 짜놓은 틀에 맞춰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잖아요.”

# 사람이 경쟁력이다
“참 기업마다 문화는 제각각이었어요. SNK에서는 오너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본식 기업문화를 그대로 경험했어요. 그리고 공장식 스튜디오를 표방한 3DO에서는 정말 빨리 게임을 개발하는 문화를 지켜봤고요. 하지만 블리자드는 개발자에게 낙원과도 같았어요. 모든 업무를 개발자 자율에 맡기는 스타일은 물론 시간, 대우 등 모든 것이 풍족했으니까요.”

그는 SNK, 3DO, 블리자드 그리고 한국 온라인게임업체를 거치면서 색다른 기업문화를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한국 게임업체의 발전상에 대한 고민도 무르익고 있었다.
“한국 게임업체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인력난인 것 같아요. 절대적인 인력이 부족해요. 대학이나 학원에 예비 개발자들이 넘쳐나지만 산학협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문제예요.”
미국에서 1년간 강사활동을 하기도 한 그는 후학양성을 위해 산학협동 커리큘럼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 한국 온라인게임 희망있다
“블리자드 시절, 빌 로퍼가 ‘리니지’를 두고 ‘디아블로’ 아류작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 상당히 불쾌했지만 완전히 부인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리니지’는 ‘디아블로’와 비슷하지만 ‘리니지’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게임성을 갖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독특함의 완성도를 높이고 선명한 색깔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는 한국 온라인게임도 조금만 더 다듬으면 세계 유수 게임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코리안 게임’ 특유의 철학과 세계관을 얼마나 잘 발굴하고 개발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뒤 인사동으로 먼저 달려가기도 했다.
“중국이나 일본업체들의 빠른 기술 습득 속도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기술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에요. 테트리스나 스타크래프트가 아직도 인기를 끄는 것은 기술적인 요인보다 뛰어난 밸런싱과 게임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한국 온라인게임에도 철학과 혼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도전
그는 최근 제이씨엔터테인먼트를 떠났다. 자신만의 색다른 온라인게임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다.
“아마 온라인 콘솔게임이 될 것 같아요. 여러사람이 즐기는 MMOG는 아니더라도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1인칭 슈팅(FPS)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요.”

10여년만에 모처럼 휴식에 돌입한 그는 함께 일하자며 여러곳에서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를 걸어 나오며 그는 새 둥지가 마련되면 꼭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한번 다짐했다.
“진짜 색다른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장지영기자(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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