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여성의 욕망 섬세하게 터치
 
제인 캠피온 감독이 일관되게 탐구한 것은 여성에 대한 뚜렷한 정체성의 자각이었다.

칸느 영화제 수상작 ‘피아노’에서 언어장애를 갖고 있던 아다가 세상과의 단절에서 벗어나 화해의 손짓을 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생생하게 자각한 이후부터였다. 또 ‘여인의 초상’에서 이자벨이 자신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것은 사랑의 거짓 환상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수잔나 무어의 소설을 영화화 한 에로틱 스릴러 ‘인더컷’에서도 중요한 것은 의문의 살인사건과 그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해 들어가는 극적 구조가 아니다. 감독이 관객과 진정으로 대화하려는 것은 여성의 욕망이라는 주제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욕망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여성들이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는 것은 사회적 금기의 하나였다. 억압된 여성들의 성적 욕망이 어떤 동기에 의해 어떻게 외적으로 표출되는지, 제인 캠피온 감독은 섬세하게 추적한다.

따라서 긴장과 공포에 의해 형성되는 스릴러 장르의 속도감이나 반전의 요소보다, 캐릭터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우리는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또 격렬한 섹스신의 자극적 요소보다, 왜곡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되는 여성의 욕망에 우리는 반응해야 한다.

흑인 속어집을 만들기 위해 비속어를 채집하는 영문학 강사 프래니. 흑인 제자와 함께 뒷골목의 작은 바에 갔다가 그녀가 목격한 것은 살인 사건 직전의 위험한 순간이 아니다. 팔에 문신을 새긴 남자와 파란 손톱을 한 여자의 오럴 섹스는 프레니의 내부에 잠재된 성적 욕망을 꿈틀거리게 한다. 따라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말로이 형사의 손에서 똑같은 문신을 발견한 후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르는 그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는 프래니의 심적 내부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왜 그녀는 위험한 남자에게서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일까? 프래니의 욕망은 겹겹이 사회적 금기와 내부의 상처로 둘러쌓여 있다. 성장과정의 아픈 경험이나 옛 사랑의 상처는 현재의 그녀를 지배한다.

제인 캠피온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여성들을 남성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획일적 시선에서 벗어나, 미묘하고 섬세하게 변화하는 욕망의 흔적을 끄집어낸다. 프래니가 강의 교재로 사용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던 프래니 부모에 대한 회상은 ‘인더컷’의 욕망 뒤에 숨겨진 핵심 주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

높은 수위의 노출신을 선보이며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맥 라이언이 프래니역에, 개방적인 성적 태도를 갖고 있는 프래니의 이복동생역에 제니퍼 제이슨 리가 케스팅돼 열연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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