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바이블' 만들어 학문적 체계화"
 
 국내 최대 규모의 프로게임단 ‘SK텔레콤 T1’의 창단식이 열리던 지난 13일. 소공동 호텔롯데에서 장인경 사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짙은 색 선글래스를 끼고 개량한복을 입은 그는 행사에 참석한 한 관계자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멀리에서도 그의 강력한 열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한국 온라인 게임산업의 ‘대모’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활달하고 직선적인 성격이 느껴지는 그는 ‘호텔에서 식사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모처럼 여의도 쪽에서 식사를 하고 윤중로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여의도에는 이미 벗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거두고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있었지만 머리위로 흩 날리는 벗꽃을 맞으며 걸어가는 것도 꽤 운치가 있었다.

 "9.11 테러로 미국의 IT 경기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어렵게 일궈냈던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어요"

 장 사장은 그 누구도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았던 98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마리텔레콤 지사를 설립하고 ‘꿈’을 위해 뛰어 들었다. 그리고 온 몸으로 느껴야 했던 좌절과 극복의 시간들. 어렵게 지켜왔던 사업도 미국 경기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9.11의 충격파 앞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모두 꽤 괜찮은 회사에 보내 놓고(본인은 ‘형님 집에 맡겨 뒀다’고 표현했지만) 홀로 남아서 미국 이곳 저곳을 방랑자처럼 떠돌았다.

 "미국에서 꽤 오래 사업을 했는데 진정한 미국의 모습을 본 것은 9.11 테러 이후 혼자서 미국 곳곳을 헤매다닐 때 였어요. 그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원초적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거죠"

 장 사장은 사업을 정리하자 자기 한 몸 쉴 곳도 마땅히 없었다고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서부에서 동부로 다시 북부로 여행 아닌 여행을 다니며 온 몸으로 미국을 느꼈다. 그리면서 그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 성공할 수 있는 단초를 찾아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세계에서 유일한 성공사례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 중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큰 붐을 이루고 있지만 한국의 게임을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왜 미국에서는 실패하고 있을까요?"

 장 사장은 그 원인이 시장에 대한 이해부족에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게임은 콘솔과 아케이드 게임들이다. 그런데 이들 게임은 온라인 게임과는 태생이 틀리다는 것이다.

"콘솔과 아케이드 게임은 20세기 형 게임"이라는 장 사장은 "온라인 게임은 21세기형 게임"이라고 단언했다. 온라인 게임은 일방향이 아니 쌍방향에 그 진정한 위력이 숨어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을 너무 거대한 벽으로 보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장 사장은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 앵글로색슨이지만 이미 히스패닉과 흑인들의 수가 그들을 능가하고 있다"며 "각각의 민족적 특성을 고려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10여년 전 그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곳도 바로 여의도였다. 그때는 인큐베이터 수준의 벤처기업을 창업해 운영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자주 찾곤 했다는 63빌딩의 스카이바를 다시 찾아가 봤다. 탁 트인 전망에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곳. 그는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활화산 처럼 터져 나오던 그의 말도 잠시 끊어져 있었다.

 "제가 할 역할은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 왜 이처럼 폭발적으로 발전했는가 하는 학문적인 분석과 토대를 만드는 것이예요. 나는 산업 현장에서 발로 뛰며 수많은 경험들을 토해 낼 수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은 없다고 봐요. 그래서 대학 교수님들과 함께 우리 게임산업의 틀을 분석하고 기본을 정리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1세대들이 남긴 성과물들을 2세대들이 물려받고 2세대들이 남긴 업적을 다시 3세대들이 물려받는 다면 한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게임강국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싸움꾼이 없어요. 외국의 경우에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지고 돌아오면 2선으로 물러나 있다가 다시 힘을 키운 다음에 또 싸우러 나갑니다. 그 뒤에는 늘 든든한 예비군들이 기다리고 있구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나가서 싸우다 패하면 다시는 그 전쟁터에 나가지 못합니다. 쉴만한 여유도 없고 대신 나가 싸울 예비군도 없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장 사장은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사장과 NHN의 김범수 사장, 그리고 플레너스의 방준혁 사장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한국 게임업체의 위상을 1억달러 수준으로 높여놨기 때문이다. 아직은 세계시장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을 정도지만 이들이 있기 때문에 10억 달러, 100억 달러 짜리 게임업체들이 뒤를 이을 것이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정말 푹 쉬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비로서 지난 10여년 세월이 정리되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앞으로 내가 게임업계에 남아서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어요"

 그가 생각하고 있는 앞으로의 사업이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게임산업의 대모로서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란 느낌이었다.
 
프로필
 
 197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8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1984년 삼성전자 상품기획과장
 1987년 쌍용컴퓨터 전략기획부장
 1989년 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1992년 과기대 ‘별무리’ 온라인게임 동아리 결성
  ‘단군의 땅’ 개발 및 시범 서비스
 1993년 메디슨텔레콤 창업
 1994년 마리텔레콤 창업
  ‘단군의 땅’ 상용화
 1998년 마리USA 설립
 2002년 DME.CA 설립
 2004년 DME.PA 설립
 
취재부장(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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