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확대 저해 VS 시장 활성화에 기여
 
‘플레이스테이션(PS)2 100만대 보급’등 장미빛 꿈에 부풀어 있던 비디오게임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그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중고 타이틀 시장의 확산’이다. 중고 타이틀의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신제품 판매가 위축되고 중장기적으로는 배급사의 도산으로 이어져 비디오 게임 시장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신작 나오자마자 중고로 둔갑
 
SCEK를 비롯해 코코캡콤, 코에이코리아 등 국내 대표적인 비디오게임 퍼블리셔들은 그간 중고 게임거래를 문제점으로 예의 주시하면서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해결책 마련 역시 소극적었다. 그 이면에는 기대 이하의 게임기 보급으로 인해 전체 시장 자체가 일정규모 이상 확대돼 있지 않은 상태이고 중고 게임도 어차피 소량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퍼블리셔 입장에서 볼 때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출시된 지 1주일 밖에 안된 신작 게임이 5000원에서 1만원 정도 싼 가격에 곧바로 중고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신작의 라이프 사이클은 극도로 짧아졌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퍼블리셔의 매출에도 상당한 마이너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체 시장이 크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고 시장이 신제품 시장 규모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어려운 게임이라도 길게 잡아 한달, 짧은 것은 3∼4일 만에 중고로 다시 거래된다. 중고 게임의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면 거래시기는 ‘촌각을 다투는 것’으로 표현된다. "요즘은 일주일만 지나면 신제품과 중고품의 구분이 필요 없어진다"고 게임 매장 직원들은 말한다.

이는 결국 "신제품에 대한 수요를 막아 기형적인 시장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퍼블리셔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청소년들, 중고게임부터 확인
 
지난 5일 식목일, 용산 나진상가 13동 지하에 밀집한 게임 매장을 찾아 중고 게임 거래를 확인해 본 결과, 게임 구매자 중 절반 이상이 중고를 구입하고 있었다. 특히 주머니가 가벼워보이는 학생들은 일단 중고 게임이 있는지의 여부부터 확인했다.

국내 비디오게임 시장의 규모는 현재 1000억원선. 중고 게임 시장은 전체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000억이라 가정할 때 300억원 규모다. 도·소매업체는 이보다 높은 40%선까지, SCEK 등 퍼블리셔는 2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로 낮게 보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 국제전자센터 등 집단전자상가 내 게임매장은 대부분 중고게임을 매매하고 있으며 할인점과 백화점 등 대형 종합 유통매장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50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중고게임이 거래되고 있다. 온라인쇼핑을 포함하면 1000개가 넘는다.

국제전자센터 ‘한우리’ 등 중고 게임으로 잘 알려진 소매점은 중고 게임 판매가 매장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월 매출만 10억원 가까이 이를 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때만 해도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의 일환으로 적극 권장할 사안이었겠지만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이 같은 중고거래의 확대는 재활용 문제를 넘어 또 다른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립 격화되는 퍼블리셔와 소매상
 
중고 타이틀 거래를 놓고 전혀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는 퍼블리셔와 소매상인들의 대립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SCEK, 코코캡콤, 코에이코리아 등 게임 퍼블리셔들은 “중고 게임의 거래는 게임 개발사 및 배급사의 매출 악화로 이어져 결국 전체 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중고품의 재활용으로 봐야하며 전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므로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게임물 유통협회 등 도소매상의 주장이다.

몇 년째 게임기 보급 확대에 이은 게임 시장 확대를 기대하며 버텨오던 퍼블리셔들은 올들어 두드러진 중고 게임 시장 확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중고 시장에 대한 일정부분의 개입과 함께 정부 규제까지 다각도의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의 전례처럼 결국 중고 시장의 활성화가 게임산업 발전에 있어 장기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 게 이들의 명분이다.

지난해 배급사의 매출은 대부분 줄었다. 많게는 절반 가까이 떨어진 업체도 있다.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온라인 게임과 저조한 게임기 보급 속에서 올해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비디오 게임업계의 위기의식은 팽배하다.

경기부진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은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중고시장의 급성장이 신제품 시장 확대를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코코캡콤 남치우 마케팅팀장은 “중고 게임 거래가 신제품 매출을 상당부분 감소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내부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지만 쉽사리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이 퍼블리셔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자칫 중고품에 대한 선전효과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처럼 앞장서 ‘총대메기’를 두려워하며 SCEK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중고 게임 시장의 중심에 있는 도·소매상인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게임물 유통협회 양천용 회장은 “중고 게임을 사고 팔면서 신제품도 함께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반론을 폈다. 그는 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소비자 입장에서 자기 물건을 바꾸거나 다른 것과 교환해 이용하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고 게임 거래를 문제삼을 경우) 개인과 개인간 거래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의 문제도 뒤따르게 된다"며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서 대면 판매를 하는 소매 업체가 생존권 차원에서 하는 중고 게임 거래를 막으면 도매업체의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전체 게임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임동식기자(dsl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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