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명성을 아로 새기다
 
1958년 미국 부룩헤이븐 국립연구소 윌리 비긴보섬 박사가 세계 최초로 ‘테니스 게임’을 개발한 이후 세계게임사도 46년이나 지났다. 46년이란 길고도 짧은 세월 동안 게임 개발사는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다. 초창기 연구원들이 장난삼아 만든 게임과 최첨단 IT기술이 결합된 오늘날의 게임은 비교조차 어렵다.
3D그래픽과 네트워크 기술이 접목된 오늘날의 게임은 가상세계를 방불케 한다. 돌이켜보면 세계게임사가 짧은 시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를 앞서 간 ‘불후의 명작’이 잇따라 쏟아졌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의 피와 땀이 서린 ‘걸작’들은 세계 게임사를 거침없이 달리게 한 기관차와도 같았다. 지구촌을 온통 게임 열기로 가득하게 한 불멸의 게임들을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

<1>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완성체 - ‘워크래프트2’

국내 게임유저에게 일반 명사처럼 너무나 익숙하고, 그러나 그 무언의 잠재력에 흥분되는 단어, 블리자드. 발표하는 게임마다 유저들을 게임매장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바로 그 회사다. 블리자드가 세계 게임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처녀작인 ‘워크래프트’부터 시작해서 ‘워크래프트2’ ‘워크래프트3’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디아블로2’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로서의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동시에 많은 아류작이 양산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가만히 헤아려보면 이 회사에서 개발한 실제 타이틀은 ‘워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딱 3개다. 나머지 게임들은 이를 기반으로 굵은 가지를 치고 나간 셈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게임 하나하나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 찬란히 빛나는 인기를 얻었으며 특히 우리나라 유저들에게 블리자드표 게임은 마약같은 존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블리자드가 이와 같은 성공을 거뒀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워크래프트’가 있었으며 이 중에서도 ‘워크래프트2’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임이다. 혹자는 ‘스타크래프트’가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이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대중적인 성공으로만 본다면 ‘스타크래프트’가 ‘워크래프트’ 시리즈보다 레벨이 높지만 이 게임은 ‘워크래프트’의 배경을 단순히 우주로 옮긴 것에서 출발했으며 게임 시스템과 엔진, 배틀넷, 유닛들의 밸런싱 등 기본 바탕은 모두 ‘워크래프트2’에 기반하고 있다. 블리자드 내에서도 ‘스타크래프트’는 일종의 외도로 본다.

# 현대판 RTS ‘프런티어’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 2: 어둠의 물결(Tides Of Darkness)’을 발표한 것은 1994년 말이었다. 이 게임은 출시되기가 바쁘게 팔려나갔고 곧 100만장을 넘어, 당시로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뒤를 이어 발표한 확장팩 ‘워크래프트 2: 어둠의 저편’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으나 블리자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디아블로에서 검증한 배틀넷을 도입하고 원본과 확장팩을 하나로 묶은 합본팩 ‘워크래프트 2: 배틀넷(이하 워크래프트 2)’을 발표하면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완성체를 빚어냈다.
‘워크래프트2’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매우 큰 작품이다. 먼저 블리자드의 처녀작 워크래프트가 최초로 RTS(Real Time Strategy)을 시도했던 ‘듄2’와 웨스트우드의 ‘커맨드 & 퀀커’의 아류작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잠재웠던 타이틀이 바로 ‘워크래프트2’였으며 멀티플레이의 혁명 배틀넷의 등장도 바로 이 게임을 통해서였다. 워크래프트는 웨스트우드의 ‘커맨드 & 퀀커’보다 떨어지는 면이 많아 당시에는 웨스트우드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2’를 발표하고 나서는 점차 형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많은 유저들이 ‘워크래프트2’와 ‘커맨드 & 퀀커’를 비교하고 토론했으며 이후로도 이 두 회사는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장르를 이끌어 나갔다. 블리자드와 웨스트우드의 치열한 경쟁은 웨스트우드가 EA에 인수되기까지 계속되었다. 하나의 예로 마우스 오른쪽과 왼쪽의 쓰임새가 정반대다.

# 온라인게임 ‘맹아’를 뿌리다
배틀넷은 디아블로에서 시험 삼아 최초로 등장시켰으나 ‘워크래프트 2’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어 현대의 각종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들이 가지는 가장 기본인 로비와 채팅, 래더(랭킹), 상호합의전투 등의 기본 개념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배틀넷을 이용하면 24시간 언제든지 다른 유저와 멀티플레이를 할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유저들은 승리를 위한 각양각색의 새로운 전략과 전술에 몰두했으며 랭킹 시스템인 래더는 최강자에 대한 경쟁심리까지 부추겼던 것이다. 말 그대로 한번 담근 발을 빼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었으며 우리나라의 사회적 문제로 자주 등장하는 ‘채팅’은 그냥 덤이었다. 이로부터 근 10년이 흘렀으나 지금도 배틀넷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시스템이 없을 정도이니 그 당시 얼마나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는지 생각해 보라. 모뎀과 IPX를 통한 간단한 통신이 전부였던 시절에 인터넷이라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염두에 둔, 앞서도 너무나 앞선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워크래프트2’가 세계 게임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가장 큰 요소다.

# ‘이단’ 논쟁까지 불러
또한 ‘워크래프트2’가 같은 시대에 무수히 등장했던 다른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들과 확실한 선을 그었던 점이 바로 유닛의 크기였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서구문화는 사실적인 묘사다. 건물이 100이라면 인간은 10이라는 비율이 지극히 정상이며 이를 벗어나면 이상하다라는 것이 그들의 관념이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커맨드 & 퀀커’가 건물에 비해 유닛들의 크기가 작아 유저들이 불편해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고 순수하게 게임플레이의 편의를 위해 유닛과 건물이 유사한 비율을 가지도록 고정관념을 깨 부셨다. 이런 점은 유저들의 호평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으며 웨스트우드와 편을 가르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고집은 꺾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3’에서도 이어졌고 여기에 익숙해진 유저들은 ‘커맨드 & 퀀커’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레드 얼럿’ ‘다크 레인’ 등의 비율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인간과 유닛이 건물 크기와 비슷하다라는 설정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2D라는 그래픽과 제한된 모니터의 크기, 능률적이고 빠른 게임플레이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살려야하는가를 고려한다면 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블리자드는 매우 합리적이었고 그들의 판단은 대부분 옳았으며 동종 개발사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정교한 밸러스 ‘군계일학’
그리고 밸런스의 얘기도 빠뜨릴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는 종족간 밸런스가 완벽하기로 유명하지만 역시 모체는 ‘워크래프트2’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에서 종족이나 군대간의 밸런스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다양한 군대나 종족을 멋지게 등장시키기는 일은 쉽지만 유저가 어떤 진영을 선택해도 공정한 게임진행이 가능하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은 완전 별개의 작업이다. 유닛도 어디 한두 개인가. 크기와 능력치가 다양한 개성적인 유닛이 골고루 배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핵심을 밸런스 조정으로 지적하는 유저도 많다. 종족이 2개가 되었든 3개가 되었든 특정 종족이 다른 것에 비해 조금이라도 강하고 유리한 면이 있다면 멀티플레이에서의 유저 선택이란 뻔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수없이 많은 실제 테스트가 필요하다.

#10년전 내건 ‘블리자드’ 깃발
물론, 블리자드라고 해서 처음부터 잘 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1991년 알렌 애드햄과 마이크 모헤임, 프랭크 피어스가 ‘실리콘&시냅스’라는 회사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 회사는 초창기시절 인터플레이를 통해 몇 개의 게임을 출시하고 평가도 좋은 편이었지만 재정은 항상 적자였고 불안한 기반에 암울한 미래만 예상됐다. 이런 상황이 점차 호전되면서 1994년 회사 이름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정식으로 변경한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최초의 게임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Orcs & Humans)’을 토해낸 것이 전설의 시작이었다.
최초의 워크래프트인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은 AD 6년 아제로스에서 벌어진 인간과 오크간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종족인 오크족과 이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전투가 게임의 기본 줄기이며 영웅 아써 경은 오크족에게 맞서기 위해 7개 인간 국가의 지도자들을 설득해 로데론 연합을 세운다. 하지만 오크족은 로데론 연합을 침공해 고대 왕국인 퀄타라스를 파괴하지만 오크족에 내분이 일어나 전세가 역전되고 만다. 이것이 워크래프트 1, 2의 스토리이며 가장 최근에 발매된 ‘워크래프트3’는 인간들의 노예였던 오크족의 젊은 지도자가 흩어진 오크들을 모아 인간들에게 대항한다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트랄이 이끄는 오크족은 워크래프트 1과 2에서 등장한 오크족과 다른 면을 보여주지만 여기에 새로 추가된 언데드와 나이트 엘프의 등장으로 아제로스는 새로운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워크래프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2’라는 완벽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유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게임이 ‘재미’를 주는지에 대해 학습했다. 그리고 이것이 불세출의 명작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3’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 왔다. 만약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워크래프트2’를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워크래프트2’가 없었다면 ‘스타크래프트’도 없었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최소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게임산업이 이렇게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성진 PC파워진 기자(hanrang@power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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