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휩쓸려 죽은 여왜의 넋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 ‘정위’로 변해
 
인류에게 자비로웠던 신 염제가 성스러운 도시 판천에 좌정해 천하를 다스린지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사람들은 염제의 가르침 덕분에 힘들고 불안했던 수렵과 채취의 생활을 벗어나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안정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그뿐인가? 염제가 가려놓은 약초 덕분에 병들거나 아픈 몸을 다스릴 수 있어서 수명도 늘어났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판천 이외의 지역에도 제법 큰 도시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되자 인간들의 사회는 전보다 훨씬 커지고 복잡해졌다. 소박하게 하루걸이로 만족했던 시절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이제 더 많은 소유와 향락을 위해 자기네들끼리 빼앗고 다투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들에게 큰 걱정거리는 인간들이 저렇게 함께 모여 살고 힘이 커지면서 신들의 세계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은 신성한 큰 나무나 큰 산의 정상을 통해 천계를 쉽게 왕래할 수 있었다. 신들이 위협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욕심 많고 분별 없는 인간들이 언젠가는 신들의 거소까지도 넘볼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신들 중에는 방자한 인간들의 세력이 커지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 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신도 있었다. 그러나 자비로운 염제는 일부 신들의 강경한 목소리를 제지했다. 그는 인간의 분별력을 믿었고 억지로 그들을 통제하려 들지 않았다. 천하의 모든 일이 자연의 이치 속에서 스스로 조화를 찾아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고요산 나들이 떠나 돌아오지 못한 요희
 
그런데 이 무렵 염제의 집안에는 갑자기 불행한 일이 잇따라 터졌다. 염제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첫 번째 불행은 딸 가운데서도 가장 어여삐 여겼던 요희(瑤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요절한 일이다. 그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아직 갓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싱그러운 나이였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와 한 손에 잡힐 듯 가벼운 허리, 어디를 바라보는지 꿈꾸는 듯 촉촉한 눈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달콤한 향기가 날 듯한 붉은 입술, 검은 구름같이 숱이 많고 잘 고른 삼단처럼 결이 고운 머리칼을 지닌 요희였다. 너무 아름다워서 뭇 신들이 탐을 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희는 집 근처 고요산(姑?山)으로 나들이를 나섰던 길에 사랑하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봄빛이 무르익은 산에서 꽃다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들뜬 마음에 독이 든 나무 열매라도 먹은 것인지, 아니면 남몰래 키우던 몹쓸 병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 까닭은 알 수가 없다. 딸의 변고를 듣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무릅쓰고 한 달음에 고요산에 닿았던 염제, 그러나 요희의 주검이 있었다는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요희의 넋인양 한 송이 풀꽃이 피어나 있었다. 생전의 요희처럼 여릿여릿하고 나붓나붓한 꽃잎이 서로 겹쳐난 잎 위에 앙증맞게 올려있는 그런 꽃이었다. 염제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자태에 사랑스러웠던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초(瑤草)’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누가 봐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요희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실새삼을 닮은 그 꽃의 열매를 먹으면 그 누구라도 남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 때문에 고요산에는 요초의 열매를 얻기 위해 산을 오르는,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사무친 그리움에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 죽은 여왜
 
염제의 불행은 한 자식을 여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요희를 잃은 슬픔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막내 딸인 여왜(女娃)가 또 동쪽 바다의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만 것이다. 귓가에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어린 아이였다. 그저 바다를 처음 본 호기심에 겁없이 다가갔을 것이다. 바다라는 것이 보는 것만큼 잔잔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어떤 폭풍우보다 무섭게 몰아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나이였다. 염제는 해가 뜨는 동쪽 땅 끝의 바다로 달려가 동쪽 바다와 바람의 신인 우호(?號)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제준의 자손인 우호여! 내 딸을 돌려주시오! 어리고 아직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그 아이를 내게, 아비의 품으로 돌려주시오!” 그 때였다. 언제 어린 목숨을 삼켰냐는 듯 고요하기만 했던 물결이 움찔, 소용돌이치더니 바다 한 가운데서 한 줌이나 될까 싶은 작은 새 한 마리가 거짓말처럼 포르르~ 날아올랐다. 눈처럼 흰 부리에 핏빛처럼 붉은 다리를 가진 까마귀를 닮은 새는 몇 번쯤 염제의 머리 위를 맴돌며 말간 눈으로 염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또록또록한 눈에서 얼핏 반짝하는 빛이 어리는가 싶었더니, 다음 순간 그 새는 북쪽 하늘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 “여왜야!” 새는 어린 여왜의 넋이었던 것이다. 어린 넋이 변한 새는 저 먼 북쪽 땅의 발구산(發鳩山)에 이르도록 지치지도 않고 날아갔다. 왜 하필이면 산뽕나무가 우거진 그 산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여왜의 넋이 변한 부리 흰 그 새는 그 날로부터 작은 부리로 산뽕나무의 잔 가지며 발구산에 널려 있는 작은 돌멩이를 물고 머나먼 동쪽 바다까지 오가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정위(精衛)라고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그 새가 자신을 빠져 죽게 만든 바다를 원망해서 끝없는 바다를 메울 때까지 작은 부리로 나뭇가지와 돌멩이들을 나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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