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휩쓸려 죽은 여왜의 넋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 ‘정위’로 변해 | |
고요산 나들이 떠나 돌아오지 못한 요희 | |
그런데 이 무렵 염제의 집안에는 갑자기 불행한 일이 잇따라 터졌다. 염제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첫 번째 불행은 딸 가운데서도 가장 어여삐 여겼던 요희(瑤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요절한 일이다. 그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아직 갓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싱그러운 나이였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와 한 손에 잡힐 듯 가벼운 허리, 어디를 바라보는지 꿈꾸는 듯 촉촉한 눈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달콤한 향기가 날 듯한 붉은 입술, 검은 구름같이 숱이 많고 잘 고른 삼단처럼 결이 고운 머리칼을 지닌 요희였다. 너무 아름다워서 뭇 신들이 탐을 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희는 집 근처 고요산(姑?山)으로 나들이를 나섰던 길에 사랑하는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봄빛이 무르익은 산에서 꽃다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들뜬 마음에 독이 든 나무 열매라도 먹은 것인지, 아니면 남몰래 키우던 몹쓸 병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그 까닭은 알 수가 없다. 딸의 변고를 듣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무릅쓰고 한 달음에 고요산에 닿았던 염제, 그러나 요희의 주검이 있었다는 자리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요희의 넋인양 한 송이 풀꽃이 피어나 있었다. 생전의 요희처럼 여릿여릿하고 나붓나붓한 꽃잎이 서로 겹쳐난 잎 위에 앙증맞게 올려있는 그런 꽃이었다. 염제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꽃의 자태에 사랑스러웠던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요초(瑤草)’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누가 봐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요희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실새삼을 닮은 그 꽃의 열매를 먹으면 그 누구라도 남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 때문에 고요산에는 요초의 열매를 얻기 위해 산을 오르는,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사무친 그리움에 가슴앓이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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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휩쓸려 죽은 여왜 | |
염제의 불행은 한 자식을 여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요희를 잃은 슬픔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막내 딸인 여왜(女娃)가 또 동쪽 바다의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만 것이다. 귓가에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어린 아이였다. 그저 바다를 처음 본 호기심에 겁없이 다가갔을 것이다. 바다라는 것이 보는 것만큼 잔잔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어떤 폭풍우보다 무섭게 몰아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나이였다. 염제는 해가 뜨는 동쪽 땅 끝의 바다로 달려가 동쪽 바다와 바람의 신인 우호(?號)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제준의 자손인 우호여! 내 딸을 돌려주시오! 어리고 아직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그 아이를 내게, 아비의 품으로 돌려주시오!” 그 때였다. 언제 어린 목숨을 삼켰냐는 듯 고요하기만 했던 물결이 움찔, 소용돌이치더니 바다 한 가운데서 한 줌이나 될까 싶은 작은 새 한 마리가 거짓말처럼 포르르~ 날아올랐다. 눈처럼 흰 부리에 핏빛처럼 붉은 다리를 가진 까마귀를 닮은 새는 몇 번쯤 염제의 머리 위를 맴돌며 말간 눈으로 염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또록또록한 눈에서 얼핏 반짝하는 빛이 어리는가 싶었더니, 다음 순간 그 새는 북쪽 하늘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 “여왜야!” 새는 어린 여왜의 넋이었던 것이다. 어린 넋이 변한 새는 저 먼 북쪽 땅의 발구산(發鳩山)에 이르도록 지치지도 않고 날아갔다. 왜 하필이면 산뽕나무가 우거진 그 산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여왜의 넋이 변한 부리 흰 그 새는 그 날로부터 작은 부리로 산뽕나무의 잔 가지며 발구산에 널려 있는 작은 돌멩이를 물고 머나먼 동쪽 바다까지 오가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정위(精衛)라고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그 새가 자신을 빠져 죽게 만든 바다를 원망해서 끝없는 바다를 메울 때까지 작은 부리로 나뭇가지와 돌멩이들을 나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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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
- 기자명 정재서
- 입력 2004.04.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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