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다루는 법, 농사짓는 법, 약초 구별하는 법 가르쳐 인간 삶 풍요롭게
 
제준이 하늘에 머무르면서 하늘과 땅과 사람, 그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감싸안은 신이었다면, 이제부터 이야기할 염제(炎帝) 신농(神農)은 하늘보다 땅에 가까워서, 신에게보다 사람에게 두터운 애정을 가졌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신일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불 다루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에 불의 제왕 염제로서, 농사짓는 기술을 가르쳤기에 농업의 신 신농(神農)으로서도 불렸던 신이 바로 그였다.

#불의 수호자 축융, 물의 신 공공 등이 후손
여느 신들처럼 염제의 생김새 또한 남다르고 독특했다. 염제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 머리는 소와 닮아 있었다. 머리에는 황소와 같이 단단한 양날의 뿔도 있었다. 벽화 속에 그려진 염제의 얼굴은 고집 센 듯 굳건히 다문 입술과 비쳐 보일 듯이 맑고 순한 눈이 선명하게 대조돼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마다 않고 앞장서는 자애로움과 한 번 뜻을 세우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우직함이 한 데 어우러진 이 신의 성격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또 다른 오래된 그림 속에서 염제는 손에 창을 든 모습으로 때로는 곡식 이삭을 손에 쥔 모습으로 때로는 검붉은 채찍을 손에 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그가 사람들을 위해 애썼던 공을 사람들이 끝까지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새겨 넣은 모습이었다.
염제가 다른 어떤 신보다 땅과 더욱 가까웠다는 사실은 그가 적수(赤水)의 딸인 청요(聽?)와 혼인의 연을 맺었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청요는 얼음과 서리의 여신이었다. 염제와 청요의 만남은 땅 위에 새로운 세상을 여는 힘이 되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으로는 세상에 있는 모든 불의 수호자이며 뜨거운 남쪽 나라를 지키는 축융(祝融)이 있다. 축융은 나중에 그 피 속에 흐르는 불의 기운 대신에 잠들어 있던 어머니의 기운을 물려받은 물의 신 공공(共工)을 낳고 공공은 이 땅을 지키는 대지모(大地母) 후토(后土)를 낳게 된다.

#염제가 거주한 판천, 사람들로 넘쳐나
인류를 위한 염제의 가장 큰 공로는 뭐니뭐니 해도 불을 사람들이 제대로 다룰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그는 처음 흙으로 만든 그릇을 구어 단단한 토기를 만들어냈고 쇠를 녹여 여러 가지 이로운 연장들을 만들어 냈다. 특히 쇠로 연장을 만드는 일에 큰 도움을 준 것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청요였다. 녹이고 불린 쇠를 식혀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청요의 차가운 기운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다지 머지 않은 훗날, 동쪽 나라들의 신이며 염제의 뒤를 이어 판천(阪泉)의 수호자가 되었던 치우(蚩尤)가 적은 수의 군사로 황제(黃帝)의 대군(大軍)을 맞아서 싸움을 벌일 적에 끝까지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염제로부터 불 다루는 기술의 비밀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의 이용과 아울러 염제가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가장 큰 혜택은 농사짓는 법이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아직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길러낸 곡식을 거두는 본격적인 농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 짐승을 잡아먹고 숲의 과일을 따먹을 뿐 미래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
농사짓기를 위해 염제는 우선 불의 신 답게 산과 들에 불을 놓았다. 불을 놓으니 잡풀과 나무들이 탄 재로 땅은 기름지게 되었고 풀과 나무의 뿌리가 굳은 땅에 틈새를 만들어 갈아엎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이렇게 불로써 거친 땅을 고르고 나자 염제는 곡물의 신 후직(后稷)에게서 조, 기장 등 곡식의 씨앗을 얻어 와 그 땅에 뿌렸다. 불을 놓아 고른 밭에서는 만족스런 가을걷이가 이루어졌다. 염제의 덕택으로 사람들은 곡식을 심고 거두어 훨씬 생활이 안정됐다.
끝으로 염제는 사람들에게 약초의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산과 들에는 수많은 종류의 식물이 있었고 사람들은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를 몰랐다. 염제는 스스로 산과 들을 다니며 하루에도 백번씩 이상한 풀과 나뭇잎을 씹어 그 맛을 보고 그것이 몸의 어디에 좋은지 혹은 해가 되는지 그 효능을 알아냈다고 한다. 일설에는 염제에게 자편(?鞭)이라고 부르는 신비한 검붉은 채찍이 있어서 그것을 식물에 대고 휘두르면 그 식물이 지닌 특성과 효능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도 한다. 염제는 이렇게 얻어진 식물에 대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 병에 걸리면 약초를 먹고 나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한의학의 시조가 된 셈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벼이삭을 쥔 모습으로 출현
사람들은 모두 이 자애로운 신 밑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리해 염제가 거주하는 동방의 판천 땅에 모여들었고 판천은 지상의 가장 성스럽고 큰 도시가 됐다. 아울러 염제 신농은 땅 위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 가운데 제일 성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염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벼이삭을 손에 쥔 모습으로 출현해 이 신이 동이계 민족들에게 숭배되는 신이었음을 알려준다. 월남 신화에서도 염제는 민족의 시조로 추앙되고 있어 이 신은 중국의 변방 민족들에게 인기 있는 신이기도 했다. 소머리를 한 모습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의 유명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연상시키지만 이미지에서는 정반대의 차이가 있다. 동양에서는 동물적인 모습이 신성시되지만 서양에서는 괴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동양의 자연 중심 사고와 서양의 인간중심 사고의 차이 때문이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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