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모험도 강행
 
넥슨, 소프트맥스, 손노리 등 대한민국 대표 게임개발사들이 올해로 나란히 10주년을 맞았다.
‘게임 1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맞는 10년의 감회는 남다르다. 외산 게임만 넘쳐나던 시절, 척박한 토양에 씨앗을 뿌린 이들은 90년대 한국을 세계에서 몇 안되는 게임 개발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바람의 나라’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이하 어스토니시아)’ 등 이들이 만든 게임은 지금도 골수 마니아들을 몰고 다닌다.
돌이켜보면 10년이란 세월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때로는 ‘희망’이, 때로는 ‘좌절’이 교차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즐거운 게임, 재미있는 게임,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는 초심이 그것이다. 이들의 지나간 10년을 반추할수록 다가올 10년이 더욱 기대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열정 하나로 시작하다
 
"제 기억으로는 ‘손노리’라는 이름은 다방에서 탄생했습니다. 초기 맴버 6명이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손노리 이원술 사장은 희미한 기억을 떠올렸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었죠. 일단 우리 손으로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였죠."
손노리, 넥슨, 소프트맥스 대한민국 대표 게임개발사는 열정 하나로 출발했다.
94년 불후의 명작 ‘어스토니시아’를 출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손노리는 그래픽 학원내 게임써클과 게임스쿨 수강생 6명이 의기투합하면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슈팅게임을 만들자고 했죠. 그러나 ‘파이널판타지4’를 본 뒤 우리 머리속엔 RPG밖에 없었어요. 따지고 보면 ‘어스토니시아’도 다분히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탄생했다고 보면 돼요."
넥슨과 소프트맥스의 출발도 비슷했다.
김정주씨, 송재경씨 등 넥슨의 설립자들도 학창시절 게임이 좋아 만난 것이 회사 설립의 계기가 됐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고 미친짓 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다 보니 개발자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였죠." 김정주씨는 "당시 게임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이단 행위’에 가까웠지만, 우리 손으로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소프트맥스 설립맴버 최연규 개발실장도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다.
"취미생활로 게임 개발과 게임필자로 활동하던 93년 우연히 ‘어스토니시아’의 데모판을 보고 깜짝 놀랬죠. 그 때 결심했습니다. 나도 훌륭한 게임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한국게임사를 쓰다
 
10살배기 게임업체들은 첫 출발은 미약했다. 돌이켜보면 열정 하나만으로 시작한 모험은 무모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지나온 길은 그대로 역사가 됐다.
94년 손노리의 데뷔작 ‘어스토니시아’는 15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1만장 넘게 팔리는 게임이 없던 시절 한마디로 신기록이었다.
"동네 문구점에서 어스토니아 메뉴얼을 복사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였죠. 용산에서 컴퓨터를 살 때 기본적으로 어스토니시아 매뉴얼을 하드디스크에 깔아주는 것이 서비스였으니까요." 이원술 사장은 자신들이 만든 게임이 그렇게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최연규 실장과 조영기 이사가 주축이 돼 개발한 ‘창세기전’시리즈도 소프트맥스를 일약 스타기업으로 만들었다. 95년 첫 시리즈에서 2000년 ‘창세기전 파트2’까지 총 6편이 출시된 ‘창세기전’시리즈는 80만장이나 팔렸다. 국산 PC게임으로는 유일하게 10년간 ‘롱런’하면서 한국게임사가 ‘창세기전’ 시리즈가 출시될 때마다 새로 작성되는 현상도 낳았다.
‘바람의 나라’를 내놓은 넥슨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게임사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95년 ‘바람의 나라’가 나오면서 그래픽 기반 온라인(머그)게임시대가 처음 열렸기 때문이다. 넥슨은 이외에도 세계 최초 롤플레잉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택티컬 커맨더스’, 33만명이 동시에 즐기는 온라인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 애니메이션 같은 게임 ‘마비노기’ 등 역작들로 한국게임사를 장식했다.
 
◇엇갈린 운명
 
10년이란 세월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세대 개발사’가 처음 출발할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개발자들은 이제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1세대 개발사’들의 엇갈린 운명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90년대 초반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낸 개발사는 손노리였다. ‘어스토니시아’가 빅히트를 치면서 손노리는 가장 잘 나가는 개발사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그 명성은 얼마가지 않아 소프트맥스로 넘어갔다. ‘창세기전’이 시리즈로 계속 개발된 반면 당초 7편까지 기획된 ‘어스토니시아’는 후속작이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편의 외전이 나왔지만 손노리는 1편 보다 더 잘 만들겠다는 장고 끝에 결국 2편을 내놓지도 못했다.
그래도 PC게임이 주축을 이루던 90년대 중·후반까지 소프트맥스와 손노리는 여전히 잘 나가는 업체들이었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이 급부상한 90년대 후반부터 소프트맥스와 손노리의 명성은 넥슨의 그림자에 서서히 가려지기 시작했다.
2000년 손노리의 대작 ‘악튜러스’가 패키지 그림 표절 시비로 국산 게임으로는 처음 리콜을 단행하고, 2001년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 후속작 ‘마그나카르타’가 심한 버그로 리콜된 사태는 결정타를 날렸다.
반면 넥슨은 2000년 매출 268억원에 당기순이익만 135억원에 달하는 초우량 기업으로 부러움을 한껏 사기 시작했다.
 
◇‘10년지기’ 경쟁과 연대
 
지난달 소프트맥스와 손노리는 ‘노리맥스’라는 온라인게임 커뮤니티를 함께 열기로 했다.
90년대 중반 퇴근하다 상대 회사 건물에 불이 켜져 있으면 다시 들어가 일을 할 정도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던 양사로서는 ‘적과의 동침’을 감행한 셈이다. 이미 소프트맥스는 지난 2001년 넥슨과 손잡고 온라인게임 ‘테일즈위버’를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경쟁만 있던 ‘10년지기’의 생존방식이 연대까지 고려하게 된 데에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장 환경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는 열정 하나만으로 출발하던 10년전부터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이들은 ‘재미있는 게임, 즐거운 게임,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것이 변함없는 소신이기 때문이다.
"현재 손노리의 목표는 넥슨과 같은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이원술 사장)" "넥슨은 소프트맥스와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언제든지 같이 할 것입니다(서원일 사장)" "손노리와 소프트맥스가 만드는 ‘노리맥스’를 기대해주세요.(정영희 사장)"
향후 10년의 비전을 묻는 말에 3개 사 CEO는 한결같이 ‘10년지기’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들의 연대는 한국게임사에서 또 다른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장지영기자(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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