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야무진 구심체 만들겠다
 
NHN 김범수 사장(38). 요즘 그는 바쁘다.
하루에 수 십명을 만나는 건 예사다. 분 단위로 짜여 진 미팅 스케줄 때문에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5시간 남짓한 ‘마라톤 회의’도 종종 주재한다. 머리는 복잡하고, 몸은 만신창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올해 ‘일복’이 터졌다.
단독 CEO에 올랐고, 한국게임산업협회(가칭) 초대 회장으로도 내정됐다. 하지만 그는 훨씬 밝아졌다. 다소 무뚝뚝하던 그지만 말 수도 제법 많아졌다.
 "두마리 토끼를 한번 잡아봐야죠."
한국게임산업협회 준비총회를 마친 다음날. 한 회사 대표에서 업계 대표로 운신을 넓힌 그는 스스로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처음에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해진 사장이 갖는 CEO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하고 있어요."
NHN 단독 CEO를 맡은 지 3개월이 지난 요즘 김 사장은 달라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듯했다. ‘한게임’으로 대변되는 게임사업만 걱정하던 그의 시야는 몰라보게 넓어진 상태였다.
"포털하면 메일, 카페, 검색, 커뮤니티로 구분하던 시대는 지났어요. 네이버하면 검색 포털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올해가 지나면 종합 포털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거에요."
NHN의 올해 화두가 외연의 확대라고 소개한 그의 고민은 비단 내수시장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제 더 넓은 해외로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올해 중국이나 일본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거에요. 지식인과 카페, 블로그로 연동된 네이버 검색서비스나 한·중·일을 아우르는 ‘한게임’의 경쟁력이면 글로벌 강자와 한번 겨뤄볼 수 있지 않겠어요."

◇ 인복? 일복?
98년 ‘한게임’을 처음 만든 그는 줄곧 고비와 맞서왔다.
삼성SDS 수석엔지니어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나, 인터넷에 놀이공간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포털업체 ‘네이버컴’과의 합병을 결정할 때는 동료들마저 반대했다. 단독 CEO 결정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스스로 잘 할 수 있을까 반문했다.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던 거죠. 인복(人福)이 많은 것도 무시할 수 없어요. 저를 믿고 도와주는 실력있는 동료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죠."
사실 그의 말대로 그는 ‘인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특유의 친근함과 은은함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네이버컴’과 합병을 앞두고 반대하는 ‘한게임’ 직원들에게 "나를 못 믿느냐"는 한마디로 설득했다는 일화는 단적인 사례다.
그가 단독CEO에 오른지 석 달도 안돼 한국게임산업협회 초대회장으로 내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했다.
"글쎄요. 생각해보니까. 인복도 인복이지만 그것 때문에 일복도 만만치 안네요."

◇ ‘큰 그림’을 그리자
그는 지난 24일 한국게임산업협회 준비총회를 마친 뒤 이른바 ‘통합협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단 초대회장을 맡기로 한 이상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협회를 설립키로 한 취지는 아주 건전해요.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역기능이 수시로 도마에 오르지만 정작 게임업체들은 무관심했잖아요. 게임업체 스스로가 건전한 게임문화에 앞장 설 필요가 있다는 합의가 이뤄진 거죠."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선뜻 협회 초대회장 제의를 수락한 것도 이 같은 대의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부터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게임업계 화두로 떠오른 수출 문제도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봐요. 중국, 대만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이 거센 마당에 지금처럼 우리 업계가 사분오열돼 있다면 온라인게임 종주국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잖아요."

◇ 조바심과 오해
한국게임산업협회 창립식은 다음달 28일로 잡혔다. 현재로서는 기본 컨셉트만 잡힌 상태라 할 일이 태산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일보다 협회가 출범하기도 전에 쏟아지는 조바심과 오해에 더욱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게임업체들이 이번엔 제대로 의기투합을 하자고 하니까 언론에서 너무 앞서 가는 것 같아요. ‘통합협회’라는 용어를 쓰면서 금방이라도 업계 대표 조직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요. 하지만 통합을 지향하지만 현재 게임업계 현실을 감안하면 그것은 좀 먼 미래에요. 모든 협회와 교감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보도가 나오니 많은 협회들로부터 적지 않은 견제와 오해도 나오고 있고요."
그는 첫술에 배가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 출범하는 협회는 따지고 보면 지난 2002년 급조된 ‘온라인게임산업연합회’가 이름과 조직을 재정비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진정으로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업계 대표 조직은 보다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봐요.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겠다는 욕심을 부리면 또 다른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요."
‘한게임’ 설립에서 ‘거함’ NHN 선장에 오르기까지. 그는 느리지만 괄목한 성과를 일궈왔다.
"거대한 바위도 미세한 낙수에 구멍이 뚤리잖아요. 우리 게임산업의 미래를 밝힐 협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피곤에 지친 그의 얼굴에선 모처럼 환한 미소가 비쳤다.
 
장지영기자(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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