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톰윈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지난 1년간 온라인게임 마니아들을 기대에 들뜨게 했던 블리자드의 온라인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가 드디어 지난 19일 클로즈드 베타서비스(이하 클베)에 돌입했다. 블리자드가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강조해 왔듯이 미국과 캐나다·한국 3개국에서만 시작했고, 문자와 음성을 벌써 한글화하는 등 한국시장을 중시한 태가 난다. 그만큼 ‘WOW’를 기다려온 국내 유저들이 많다. 하지만 1차 테스터로 선정됐다는 이메일을 받고 게임에 접한 유저는 불과 100여명. 테스터로 선정되지 못한 대다수 마니아들로서는 아쉬움만 더해가고 있을 터. 후배 기자의 테스터 계정을 강탈(?)하다시피 해 ‘WOW’에 입문했다. ‘탐험기’를 쓰겠다는 임무를 띠고...
 
1차 클베 맞아?
 
처음 접한 ‘WOW’의 세계는 ‘역시 블리자드!’라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주위로 보이는 배경은 물론 캐릭터의 모습, 움직임 등 모두가 최고였다. 특히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펼쳐지는 휴먼마을은 ‘이런 곳에서 살아봤으면∼’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녹음이 우거진 낙원의 모습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틀려서 그럴까. 국산 온라인게임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다.
그래픽은 물론이고 잘짜여진 구성과 안정감이 돋보인다. 여기에 클베중인 게임답지 않게 ‘랙’이나 ‘서버다운’도 발생하지 않았다. 테스트를 한다기 보다는 이미 안정된 게임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주변에서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1차 클베가 이정도로 안정돼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라며 혀를 내두른다.
감탄만 하던 나에게 기존 온라인게임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터페이스는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왔다. 홈페이지에서 기본적인 사항을 둘러보고 접속했건만 사냥은 커녕 캐릭터를 움직여 나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한참을 해본 후에야 다소 익숙해지기는 했지만(사실 아직도 이동을 하다가 달려드는 몬스터를 잡아야 할 경우에는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때가 많다)
 ‘WOW’의 인터페이스는 너무나 복잡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동시에 이용해야만 원활한 조작이 가능했다. ‘리니지’류의 게임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특히 사냥을 할 때면 더욱 심한 답답증을 경험해야 했다. ‘W’키와 ‘A’또는 ‘D’키를 잘 사용해 키보드만으로 움직여 나가거나 마우스 양쪽버튼을 누른 상태에서 방향을 조절하는 등 마우스만으로 이동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동과 사냥을 병행해서 하는 데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적절하게 병용하는 콘트롤이 필요했다.
 
퀘스트만 해도 되는 게임!
 
다른 모든 게임에서도 그렇듯 인간과 가장 유사한 종족인 휴먼족을 선택했고, 직업은 전투나 보조스킬 면에서 가장 성스러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성기사로 정했다. ‘리니지2’에서 팔라딘을 키워왔던 터라 비슷한 속성을 지닌 직업이니 만큼 빨리 적응할 수 있으려니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나의 분신인 휴먼 성기사가 태어난 곳은 엘윈숲 노스샤이어계곡이다. 탄생하자 마자 바로 눈앞에 보이는 NPC의 머리 위에 노란색 느낌표(!)가 보인다. 부관 윌렘이라는 이 NPC를 클릭하자 ‘치안대장 맥브라이드와 대화하라’는 퀘스트를 준다. 첫 퀘스트라서 그런지 무지 쉽다. 바로 앞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가 입구에 바로 물음표(?)를 달고 있는 치안대장이 나타났다. 치안대장은 10의 경험치를 주며 "이제부터 기나긴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진다. 그러면서 이어진 것이 "코볼트졸개 7마리를 처단하라"는 또다른 퀘스트였다.
이렇게 시작한 퀘스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고, 이를 따라 게임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6레벨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동안 퀘스트 외에 한 일이라고는 습득한 아이템을 상점에 팔아 인벤토리를 비우거나 레벨을 올릴 때마다 새로 획득한 스킬 포인트를 활용해 능력치를 올려주고, 상급 성기사를 찾아가 새로운 스킬을 배운 것이 전부였다. 물론 다리품은 엄청 팔아야 했다. 맵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며 투덜댄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아무래도 이 게임은 모든 지역 자체를 직접 둘러봐야만 하도록 설정한 모양이다. 가끔가다 새로운 마을이나 지역을 찾게되면 대단한 성과라도 올린 것처럼 ‘00을 발견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약간의 경험치가 보너스로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는 거의 확실하다.
여기 저기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며 퀘스트에 몰입해 있는 동안 나의 휴먼 성기사는 노스샤이어계곡을 떠나 골드샤이어 마을과 엘윈숲 일대를 누비고 있었다. 아이템도 바뀌어 제법 그럴싸하게 치장을 했다. 퀘스트 창에는 아직도 해결해야할 퀘스트가 3∼4개나 밀려 있었다.
게임 내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1차 클베에만 총 900여개의 퀘스트가 구현됐다고 하니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스톰윈드에서 길을 잃다
 
역시 퀘스트를 쫓아 휴먼종족의 도시인 ‘스톰윈드’를 찾아갔다. ‘우와∼’ 스톰윈드 입구에는 휴먼족의 다양한 직업을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조형물들이 나를 반겼다. ‘영웅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전설속에 나오는 휴먼족 영웅들의 형상인 모양이다.
감탄을 거듭하며 들어선 스톰윈드는 입구에서 보여준 위용만큼이나 거대했다. 상업지구·마법사지구·드워프지구·공원·구시가지 등 대운하를 끼고 다양한 지역들이 존재했다. 곳곳에 이들 지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기는 했지만 이는 직접 뛰어다니지 않고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이렇게 넓은 곳에서 퀘스트를 위해 만나야할 NPC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니. 물어 물어 대상 NPC를 찾아 퀘스트를 완료하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똑같은 지구를 몇차례씩 지나치며 그 넓은 도시를 빙빙 돌야야 했다. "지리만 알고 있었어도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컷다.
겨우 찾아낸 NPC에게 또다른 퀘스트를 받았다. 북쪽에 있는 모던호수 근처에 있는 ‘스톰파이크’라는 드워프 경비병에게 소포를 배달해 주는 퀘스트였다. "쩝! 모던호수는 또 어디람?" 다른 퀘스트를 위해 ‘서부 몰락지대’를 찾아갔다가 모던호수에 가려면 스톰윈드에서 그리폰을 타고 여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헛! 그리폰?"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다시 찾은 스톰윈드에서 나는 심한 절망감을 맛봐야만 했다. 그리폰 정류장을 찾기 위해 무려 2시간을 헤멨다.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 마법사의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고, 나이트엘프 종족이 모여있는 공원에서는 ‘생존 전문가’를 만나 새로운 스킬을 배우기도 했다.
결국 그리폰 정류장은 전체 채팅창에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날린 끝에 다른 지역에 있던 유저가 다시 그리폰을 타고 돌아와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찾을 수 있었다. 허탈하게도 그리폰 정류장은 성문 바로 옆에 있었다.-.-
 
11레벨에 하늘을 날다
 
그리폰을 타는 방법은 너무나 쉬웠다. 그리폰 조련사를 클릭해 여행 목적지를 정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준비 완료. 둥지에 앉아있던 그리폰 한마리가 나타나는데 그냥 마우스로 클릭하면 타고 날기 시작한다. 비행경로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코스에서 내려다 본 경치는 그동안 정류장을 찾기 위해 했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정류장을 빠져나온 그리폰은 영웅의 계곡을 통과해 스톰윈드를 빠져나오더니 내가 그동안 활동해온 골드샤이어 지역과 처음 태어난 곳인 노스샤이어계곡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날았다. ‘야호∼’ 그동안 열심히 뛰어다니던 지역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은 환상이었다.
이리 저리 화면을 돌려가며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황홀경이 따로 없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스크린샷을 눌렀다. 그러는 동안 그리폰은 엘윈숲을 빠져나가더니 산맥을 넘어 온통 붉은색 기운이 감도는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하늘조차 붉게 물든 불타는 평원과 폭풍의 제단,용광로,불타는골짜기 등을 노란색 태양을 등에 지고 하늘을 날으는 순간 순간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드워프 마을인 듯한 던모로 상공으로 접어들자 풍경은 은빛으로 변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전에 ‘리니지2’를 하면서 다른 유저들과 장난삼아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용한번 타고 하늘을 날아봐야죠." "그러자고 혈전도 하고 공성전도 하는 거 아닐까요?"
그랬다. ‘리니지2’를 즐기는 유저들 가운데 상당수는 동영상을 통해 보았던 용을 타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모습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힘든 노가다를 감수하고 별 쓸모도 없는 ‘헤츨링’을 열심히 키우기도 한다. 이왕이면 성을 차지할 수 있는 힘과 규모를 갖춘 혈맹에 가입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성혈에 들어야만 용을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때문이다.
던모로를 지나 드워프 종족의 도시인 ‘아이언포지’에 도착했을 때도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생각보다는 여행이 너무 짧다는 아쉬움이 더했다. "퀘스트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리폰만 타고 왔다갔다 할까?" "아니야, 좀더 돌아다니다 보면 더 많은 비행 기회가 생기겠지?" 여러가지 생각과 욕심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김순기기자(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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