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닦는 '연수원'
 
"블루빈 2장이랑 레드빈이랑 바꿀 사람∼" "야호∼ 다 털었다" "백턴이닷!"
필요한 카드를 얻기 위해 흥정을 하는 소리, 승리감에 내지르는 환호성,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박장대소.
여럿이 모여 사람냄새를 맡으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02년 처음 등장한 보드게임방이 어느덧 전국에 700여개로 늘었다. 서울에만도 신촌에 30∼40개가 밀집해 있는 것을 비롯해 서울대 앞에 6∼7개, 고대앞에 10여개가 모여있다.
이 가운데 신림동에 자리잡은 ‘페이퍼이야기’는 젊은이들이 아지트처럼 이용하는 대표적인 보드게임방으로 꼽힌다. 국내 최초의 보드게임 전문 카페인 이곳은 여성 프로게이머 출신의 윤지현(31) 사장이 설립한 곳으로 초기부터 젊은이들로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윤사장은 서울대를 휴학하고 프로게이머로 나서 화제가 된데다 공식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남자선수들을 꺽어 파란을 일으킬 정도의 고수였던 터라 그녀를 알아보는 손님이 많았다.
물론 초기에는 PC통신 동호회에서 알게된 보드게임 동호인들의 도움이 컷다. 25평 남짓한 지하에 자리잡고 있을 때였다. PC통신 동호회원들이 매일 찾아와 자리를 메워준 덕택에 처음에는 카페인줄 알고 찾아왔다가 발길을 돌리던 사람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곤 며칠 후에 친구와 함께 놀러오기 시작했다. 보드게임에 맛을 들인 이들은 또다시 다른 친구를 데려왔고 ‘페이퍼이야기’는 금새 입소문을 타고 번져갔다. 그러다보니 ‘페이퍼이야기’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유명세를 탓다.
그렇지만 ‘페이퍼이야기’가 그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다른 보드게임방과 경쟁을 해야하는 어려움을 뚫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데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대표가 프로게이머에서 보드게임 마니아로 돌변한 덕택에 항상 다양한 보드게임을 접할 수 있었던데다 한번 찾은 손님을 마니아로 만들 정도로 친절한 전문 도우미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점 등이었다.
실제로 이 곳에는 최고의 인기 게임인 ‘할리갈리’를 비롯해 추리력을 요하는 ‘클루’,원래 이름 보다는 ‘콩심기 게임’으로 더 많이 알려진 ‘보난자’ 등 총 100여종에 달하는 다양한 게임이 준비돼 있다. ‘페이퍼이야기’에는 특히 외국에서 직접 들여온 신작게임이 많아 항상 새로운 게임을 접할 수 있다.
‘트럼프’와 ‘화투’류의 게임은 절대 허용하지 않은 운영원칙도 ‘페이퍼이야기’를 건전한 놀이공간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페이퍼이야기’가 전국에 9개의 체인점을 거느린 플랜차이즈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이 곳은 지하에서 벗어나 지상 4층의 넓고 아늑한 공간으로 이동을 했다.
이같은 외형상의 변화 외에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객층이 20∼30대 중심에서 중고생층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정도. ‘페이퍼이야기’는 어느새 혼자 놀기 좋아하는 10대층에도 게임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 더불어 사는 문화를 익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 보드게임 전도사 윤지현
 
"보드게임은 간접 교육효과가 뛰어난 게임이예요. 사회의 툴과 원칙은 물론 애티켓과 인간관계에서부터 협상능력과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서 장점이 많아요. 앞으로도 보드게임을 전파하는데 주력할 계획이예요."
보드게임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윤지현사장은 국내에 보드게임 문화를 심겠다는 열의가 대단하다. 남달리 승부욕이 강하고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의 그녀인지라 읊조리듯 조용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힘이 느껴진다.
그녀의 승부근성은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서울여대를 졸업하고 다시 시험을 치러 서울대에 입학한 그녀는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지 불과 2년만에 한국기원 공식 아마초단 자격증을 따낸다. 또 99년부터 배운 ‘스타크’ 실력은 그녀를 프로게이머로 나서게 할 정도였다. 얌전하고 조용하기만한 외모와는 반대로 어떤 게임이든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옹골찬 성격이 크게 작용했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뒤지기 싫어서 배웠는데 배운걸 써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에 프로로 나섰어요. 사실 ‘스타크’는 ‘여자라서 못한다’는 소리에 발끈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승부근성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그녀가 공식대회에서 그것도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남자선수들을 꺽는 파란을 일으킨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보드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초. 자신이 감독겸 선수로 뛰던 NHN에서 게임기획자로 근무하다 알게된 보드게임의 무궁무진한 승부세계가 또다시 그녀를 유혹했다. ‘스타크’를 뒤로 한채 배우기 시작한 그녀가 지금까지 배운 보드게임만해도 150여종에 이른다.
"지난해 말부터 보드게임 유통사업을 시작했어요. 외국 보드게임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일부 게임은 직접 한글화를 해서 출시했죠. 국내에 보드게임 문화를 확실히 심을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자신이 처음으로 선보인 보드게임 카페 ‘페이퍼이야기’를 어느새 연매출 30억원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녀가 밝힌 다부진 포부다.
 
김순기기자(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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