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묘묘한 형상의 신과 인간, 상상력의 극치 보여줘
 
이제 세 번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사실 첫 회에서 설명해야 했지만 지면 관계로 간략한 소개만 했는데 독자들 중에 이 책이 우리 고대문화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리고 왜 오늘의 문화산업이 이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다음 회로 넘어가기로 한다.
먼저 ‘산해경’이란 책은 어떠한 책인가.
‘산해경’은 기원전 3-4세기 무렵에 이루어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이다. 이 책을 지은 사람은 자세하진 않으나 중국의 동방 지역의 무당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각 지역의 기괴한 사물들, 신과 영웅, 괴물들과 먼 곳의 이상한 나라에 대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기이한 책(奇書)’으로 취급되어 왔다.
중국의 많은 고전들 중 본 연재에서 특별히 ‘산해경’을 한국신화 원형의 발굴과 관련하여 주목하는 이유로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산해경’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으로 일컬어진다. 이 말은 곧 ‘산해경’이 한국을 비롯한 고대 동아시아 문화 전반과 상관된 책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신화 시대의 중국 대륙은 오늘의 한족(漢族)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공유하던 지역이었으므로 ‘산해경’의 내용은 오늘의 중국문화의 내용을 훨씬 넘어서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산해경’에는 조선(朝鮮), 숙신(肅愼), 부여(夫餘), 예맥(穢貊), 삼한(三韓) 등 고대 한국을 가리켰던 나라들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고 청구국(靑丘國), 군자국(君子國), 대인국(大人國), 백민국(白民國), 삼위산(三危山), 불함산(不咸山) 등 고대 한국을 암시했던 신화적 공간에 대한 표현도 자주 눈에 띤다.
둘째, ‘산해경’에 담긴 신화는 다양한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신화 내용을 포괄하고 있으면서도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나뉘어 진다. 황제(黃帝)를 숭배하는 서방의 화하계(華夏系) 신화와 염제(炎帝), 제준(帝俊) 등을 숭배하는 동방의 동이계(東夷系) 신화가 그것인데 ‘산해경’은 뚜렷이 친 동이계적 성향을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산해경의 저자가 중국의 동방 지역의 무당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이계 신화는 은(殷) 나라 및 우리 고대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령 ‘산해경’내의 신화에서 동이계에 속하는 염제, 제준, 치우(蚩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과보(?父), 하백(河伯) 등의 신들과 우리 신화와의 관련성은 이미 많은 학자들의 논의에서 입증되거나 주장된 바 있다. 아울러 난생신화, 조류숭배, 샤머니즘 등 양자가 공유하고 있는 원시문화적 특징 등을 통해서도 ‘산해경’ 중의 동이계 신화를 한국신화의 원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고조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산해경’에 있으며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호칭하고 우리의 국화를 무궁화로 삼게 된 내력이 ‘산해경’의 군자국에 대한 기록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산해경’이 한국신화 원형의 큰 광맥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산해경’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신과 괴물들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부터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 조선 시기에도 많은 문인들이 ‘산해경’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창작하곤 했다.
‘산해경’은 오늘의 우리 독서계에서도 이미 낯선 책이 아니다. 재야 사학자들은 다소 황당한 감이 있지만 이 책을 근거로 고대의 우리나라가 천하를 지배했던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환타지나 이미지 자료를 다루는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업계, 문학, 예술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동아시아 상상력의 보물창고로서 이 책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산해경’이 특히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이유는 이 책이 동아시아의 고전으로서는 드물게 수많은 이미지 자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기묘묘한 모습의 신과 인간, 각종의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괴물 이미지는 인간의 상상력의 극치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산해경’이야말로 우리 신화의 원형이 감춰져있는 커다란 광맥, 그리고 상상력과 이미지의 보물창고라는 점에서 가뜩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와 마법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한국적인 것의 빈곤을 한탄하는 우리로서는 이 책이 지닌 풍부한 가치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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