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자
 
스토브리그. 올해 처음으로 생긴 1년에 2번 있는 휴식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선수들의 드래프트나 다음 리그를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선수들에게는 얼마 안되는 꿀같은 휴가인 셈이다. 나 또한 이 시기에는 바쁘게 지냈던 일상을 뒤로 한 채 그간의 실수를 돌이켜보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평소에 못 가던 곳을 가보기도 했다. 또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즐기고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 시간에 이사를 했다. 멀리 간 것은 아니고 같은 동네로 이사를 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이삿짐을 챙기면서 가장 손에 많이 닿았던 물건은 그간 받았던 입상트로피와 상장들이었다. 하나하나 옮길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로웠다. 무수히 거쳐 갔던 나의 상대선수들과 대회장 분위기, 팬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그 많은 트로피 가운데 내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2위 트로피였다. ‘XXXX리그 준우승’ ‘OO배 스타리그 2위’ 등. 1위 못 지 않게 2위 트로피도 많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욕심이 많았던 터라 최고가 아니면 최고에 가깝더라도 성에 차지 않았던 나는 이 트로피들을 볼 때 마다 ‘왜 좀더 잘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에 꽤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적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얼마 전에 코치님에게 들은 노벨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노벨상을 만든 그는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화학자였고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어린시절 항상 2등만 했다. 어느날은 시험 전날 1등을 하던 학생이 결석을 했다. 2등만 했던 노벨에게는 1등을 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반 아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을 했고 이번만은 순위가 바뀔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험결과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1등을 하던 학생이 또다시 1등을 했고 노벨은 2등이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학교수업을 듣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1등을 할 수 있지?" 이유는 노벨이 전날의 수업내용을 모두 요약해서 그 학생에게 가져다 준 것이였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이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시합에서 2위를 할 때마다 상대가 '나보다 연습을 덜했어야 할 텐데….'라던지 '나보다 컨디션이 나빠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낀다.
‘1위보다 값진 2위’ 라는 말이 허울뿐인 위안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삶 자체를 경쟁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지금 이 말이 새삼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느 누구나 무엇이 옳고 그른 지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에 옮기기가 힘들다. 결과보다 과정에 중시하는 자세는 앞으로도 많은 세월동안 갈고 닦아야할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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