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리스와 한게임
 
# 국민게임 ‘포트리스’

‘리니지’가 성공하면서 이를 벤치마킹한 아류작이 넘쳐났다. 판타지풍의 세계관은 물론 조작 인터페이스, 심지어 공성전까지 그대로 베낀 온라인 RPG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한번 손을 잡으면 다른 게임으로 쉽게 옮길 수 없는 온라인게임의 특성 때문에 ‘리니지의 아성’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에피소드가 계속 추가되면서 방대해진 게임세계도 ‘리니지’ 독주체제를 더욱 공고히 했다.

‘리니지’ 아류작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2000년대 후반 CCR이 개발한 ‘포트리스’의 급부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95년 3월 대학생 벤처로 출발한 CCR가 97년 8월 ‘포트리스1’을 선보일 당시에만 해도 ‘포트리스’는 여전히 미완의 대기였다.

하지만 2년 뒤 리뉴얼버전 ‘포트리스2’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3개월만에 회원이 40만명을 돌파했고, 매달 회원이 100만명씩 폭주하는 열풍이 이어졌다. 2000년 12월 650만명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포트리스’라는 이름 앞에는 ‘국민게임’이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하지만 CCR는 늘어나는 회원과 정비례해 비용은 늘어났고 그 만큼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윤석호 사장은 당시 상황을 배수진을 친 심정이었다고 표현한다.

"포트리스의 성공은 마우스 클릭 한번이면 탱크들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점이 대중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서버 등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유료화 모델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리니지’나 ‘영웅문’ 등이 고집한 월정액제를 실시한다면 게임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했거든요. 끊임없는 회의가 이어졌고, 결국 우리는 일반인에게는 무료, PC방에는 유료라는 다소 도발적인 모험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예견했던 대로 PC방은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650만명이라는 ‘유저 파워’는 막강했다. 고객 유치라는 현실적인 고민에 봉착한 PC방 업주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포트리스2’ 사용료를 낼 수밖에 없었다.

‘배틀마린’ ‘워터크래프트’ 등 ‘포트리스 아류작’도 이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온라인게임이 ‘리니지’처럼 마니아층을 공략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 한게임 열풍

2000년 ‘포트리스’가 한참 주가를 올리던 시절, 국내 최초의 게임포털을 표방한 ‘한게임’도 온라인게임 신드롬의 한축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고스톱, 포커 등 카드류 게임을 온라인상에 그대로 옮겨 놓은 ‘한게임’은 직장인들의 풍속도를 바꿔놓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이면 "한게임 한판할까"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포트리스’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였다면 ‘한게임’은 20∼30대의 젊은 직장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한게임’ 역시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삼성SDS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김범수 사장은 98년 서울교대 앞 조그만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열었지만 사표가 수리되지 않아 9개월 가량을 낮에는 삼성SDS로, 밤에는 ‘한게임’ 사무실로 출근하는 ‘이중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김범수 사장은 한게임이 처음 이륙할 당시를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게임이 나오기까지는 캐시카우가 필요했어요.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PC방으로 사무실로 옮기기도 했고, 자체 개발한 PC방 관리프로그램을 전국 PC방에 파는 일종의 PC방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게임’을 오픈했을 때는 밀려드는 유저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서버를 증설해야 했습니다. 서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인터넷 기업에 ‘한게임’을 팔아 유저를 분사시켜야 했을 정도니까요."

‘한게임’ 성공사에는 2001년 ‘네이버’와의 합병을 빼놓을 수 없다. 게임 개발에만 전념했던 ‘한게임’의 맨파워로서는 비대해진 회사를 합리적으로 경영할 노하우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경영 노하우와 자본력이 절박했던 ‘한게임’과 킬러콘텐츠가 아쉬웠던 ‘네이버’의 결합은 이후 인터넷 벤처기업 M&A의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로 평가받기도 했다.
‘한게임’으로 대변되는 ‘게임포털 성공신화’는 후발주자인 ‘넷마블’과 ‘피망’의 잇딴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장지영 기자(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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