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에 나타난 군자국, 한국인의 본향 | |
먼저 동방의 벌판으로 나아가면 군자국(君子國)이라는 곳에 이른다.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키가 훌쩍 컸다. 그들은 좋은 풍채에 옷을 단정히 입고 허리에 칼을 찬 채 두 마리의 무늬진 호랑이를 데리고 다녔다. 이 나라 사람들은 늘 서로 양보하며 다투지 않았다. 늘 큰 사람을 따라 그를 받들어 예의를 지키기 때문에 군자국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나라에는 무궁화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데 그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시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다시 피어났다. 그래서 길이길이 피는 꽃이라서 무궁화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이 나라에는 또 봉황이라는 신기한 새가 살고 있었다. 봉황은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고 부르는데 이 새들은 동쪽 하늘을 맡고 있는 제준(帝俊)이라는 천신의 벗으로 이 천신이 세상에 내려올 때면 꼭 이들과 동행했다. 이들은 동방의 군자국에서 나와 세상을 돌아다녔는데 이들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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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가 사는 청구국 | |
군자국에서 북쪽으로 더 가면 숙신국(肅愼國)이라는 나라에 이른다. 이 나라에는 불함산(不咸山)이라는 엄청나게 크고 신성한 산이 있다. 불함산이란 태양처럼 빛나는 밝은 산이라는 뜻인데 이 산의 꼭대기가 일년중의 대부분을 흰 눈에 덮여 있어서 백두산(白頭山) 혹은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산은 동방 민족이 숭배하는 영산(靈山)이다. 신성한 이 산은 그 옛날 천제의 아들인 환웅(桓雄) 천왕이 삼천명의 무리를 이끌고 강림하여 신의 도시(神市)를 건설한 곳이기도 하다. 이 산에 사는 동물들도 신성하여 모두 흰 빛깔이었고 사람들은 신성한 이 산에서 감히 용변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숙신국에는 또 웅상이라는 신비한 나무가 자랐다. 이 나무는 신성한 불함산의 정기를 타고나 새벽을 여는 해처럼 환하고 밝았다. 숙신국 사람들은 그 나무껍질로 실을 잣고 옷을 지어 입는데 그 실로 짠 천 곧 웅상포(雄常布)는 불함산 마루를 덮은 눈처럼 희며 달빛처럼 고왔다. 숙신국 바로 곁에 있는 백민국(白民國)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불함산의 정기를 듬뿍 받고 태어나서 그런지 온몸이 희었다. 이 나라에는 또한 승황(乘黃)이라는 신기한 동물이 살고 있었다. 승황은 여우 같이 생기고 등에 뿔이 나 있는데 이것을 타고 다니면 이천살이나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동방의 조선 민족은 또한 남쪽의 발해(渤海) 바닷가에도 모여 살았다. 그런데 발해 바다를 한참 배타고 가면 아득히 먼 바다 위에 홀연히 세 개의 섬이 나타났다. 이 섬들엔 항상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어서 그 모습이 다 보이지 않았는데 섬으로부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로운 내음이 풍겨와 사람의 정신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 섬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인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이었다.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라 불리는 세 개의 신비한 섬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섬들에는 금과 은으로 지어진 궁궐이 있고 신선들만이 그곳에 살았는데 신선들은 섬과 섬 사이를 새처럼 날아서 왕래하였다. 이 섬들에는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하는 불로초가 자라고 불사약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가보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나 간혹 용기 있는 어부들이 이 섬들에 배를 접근시켰다 하면 갑자기 큰 바람이 불어와 배를 뒤로 밀어붙여 다가갈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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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국과 장비국 사람의 조화 | |
군자국은 ‘산해경’에 기록된 이상향의 나라로 우리나라를 지칭해온 가장 익히 알려진 두 가지 표현의 출처이다. 다름 아니라 군자국에서는 "백성들이 양보를 좋아해 다투는 일이 없다(好讓不爭)"고 했는데 이 말은 후세에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하게 되는 가장 오래된 근거이다. 그리고 "무궁화 꽃이 많이 핀다"는 언급은 우리나라를 ‘근역(槿域)’ 곧 무궁화의 땅으로 규정해 결국 무궁화를 국화로 삼게 되는 동기가 됐기 때문이다. 또 군자국 사람들은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린다”는 기록도 있는데 일찍이 최남선은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에서 이 말이 우리의 산신도(山神圖)에서 산신령(山神靈)이 호랑이를 부리고 있는 모습과 일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해경’에는 이밖에도 고조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간주되는 문구가 있다. "조선의 백성들을 하늘이 길렀고 그들은 남을 아끼고 사랑하며 물가에 모여 산다"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고대의 우리 민족이 즐겨 행하던 제천의식, 남을 침략하지 않는 심성, 큰 강가에 도읍을 정하던 습성 등과 상관된 이러한 언급은 앞서의 군자국의 기록과 더불어 우리의 문헌에서 발견할 수 없는 진정한 한국신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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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webmaster@thegames.co.kr) |
- 기자명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
- 입력 2004.03.18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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