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전쟁인가 적과의 동침인가?
 
온라인게임이 지금의 영화를 누리기까지는 인터넷의 대중화를 이루는데 PC방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시기적으로 보아도 온라인게임 성장세와 PC방 증가세는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초고속 통신망 보급과 함께 등장한 PC방은 IMF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친 직후부터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규모로 양산된 실업자들 가운데 PC방 사업에 나선 이들이 부쩍 늘어난 것. 바로 1998년 하반기의 일이다.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PC방은 어느덧 2만5000개소를 넘어섰다.
온라인게임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단군의 땅’과 ‘쥬라기공원’이 1994년 선 보였지만 이들 게임은 PC통신을 기반으로 한 머드게임이라 마니아층은 확보했지만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이 등장한 것은 1995년 말이었다. 당시 머드게임에 그래픽을 입힌 최초의 머그게임인 ‘바람의 나라’가 등장, 천리안을 통해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97년 말에는 아직까지도 최고 온라인게임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는 ‘리니지’가 첫선을 보였다.
1997년 말까지만해도 동시접속자가 1000명 정도에 불과했던 이들 게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98년 하반기부터다. 바로 PC방이 붐을 이루며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또 PC방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00년에는 ‘포트리스’가 등장, 전국의 PC방을 공략하는데 성공하면서 ‘국민게임’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이후부터 온라인게임과 PC방은 상부상조의 틀을 형성하며 동반 성장하기에 이른다. 온라인게임은 PC방을 배경으로 회원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갔으며 PC방은 이들 게임의 인기를 바탕으로 성황을 이뤘다. 대부분의 PC방이 몇몇 인기 온라인게임에 매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동반자의 관계는 어느 때 부터인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등의 불씨는 ‘PC방 계정료’ 온라인게임업체들이 PC방에 제공하는 IP(계정) 요금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PC방 계정은 개인 계정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의 유저가 개인 계정이 없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차별화한 상품이다.
이를 통해 온라인게임업체는 부를 축적해 나갔고, PC방들도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매출 가운데 상당부분을 온라인게임업체에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 PC방들은 계정료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이미 온라인게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몇몇 인기게임의 인기를 뛰어넘지 못한 게임업체나 신생 게임사들은 PC방 계정 무료화를 선언하며 시장 진입을 모색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하지만 선발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입장도 완강했다. 자사 게임의 인기가 PC방 매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전국 PC방 협회인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가 몇몇 잘나가는 온라인게임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강수를 두기에 이르렀다. PC방 협회가 일부 온라인게임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게임과 PC방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서로가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보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때문이다. 협회 차원에서는 불매운동을 종용하지만 막상 그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면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것이 PC방의 현실이라 적극 동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느긋한 입장도 아니다. PC방들이 협회차원에서 벌이는 불매운동이 구두선에 그치더라도 회사의 이미지는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서로가 ‘PC방이 없었다면 온라인게임이 성장할 수 없었다’거나 ‘온라인게임이 없이는 PC방 영업이 힘들 것’이라며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온라인게임과 PC방은 운명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는 동반자다. 지금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이 조차도 양자간의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과정으로 비춰질 뿐이다.
 
PC방 덕분인줄 아뢰오∼
 
8년 9월 상용화를 단행한 ‘리니지’는 4개월동안 1000명의 동시접속자를 확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99년 말 1만명을 넘어선 것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속해 2000년 말에는 동접 10만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대박게임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게 된다.
2000년 하반기에는 ‘포트리스’라는 온라인 아케이드 게임이 급성장세를 그린다. 매달 회원이 100만명씩 늘어나며 그 해 말에만 650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국민게임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염을 토한다.
‘리니지’가 PC방 확산과 더불어 영역을 넓혀가며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최고의 게임이 됐다면, ‘포트리스’는 온라인게임의 인프라 격인 PC방 공략에 성공하며 대박게임의 반열에 올라선 게임이다. ‘포트리스’는 이후 PC방 업계의 심한 반발을 사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PC방 덕분에 한때나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게임이었다.
 PC방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대박게임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2000년 들어 NHN의 게임포털인 ‘한게임’이 급부상한 배경에도 PC방이 있었다. 한게임의 ‘고스톱’과 ‘포커’ 게임은 PC방 이용자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국내에 ‘고스톱’과 ‘포커’ 신드롬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온라인게임에 사용되는 ‘사이버머니’가 현금으로 거래되고 심지어 ‘사이버머니’를 찍어내는(?)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한게임’에 대한 이처럼 열광적인 반응은 NHN을 게임 퍼블리셔로 거듭나게 한데 이어 코스닥 입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편 ‘포트리스’가 유료화를 단행하자 PC방 단체들은 이 게임을 대체할 주자로 ‘넷마블’을 선정해 전략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했다. 이 영향과 보드게임 열풍을 타고 ‘넷마블’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또 넷마블은 ‘사이버머니’를 둘러싼 파문으로 ‘한게임’이 잠시 주춤하는 틈을 타 급성장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모기업격인 플래너스를 인수하는 대반전을 만들어 냈다. PC방을 통해 확산된 ‘고스톱’ 열풍이 일등공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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