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칼럼’
‘이수영 칼럼’
  • 이젠 사장
  • 승인 2004.03.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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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1세대를 추억하며
 
우선 ‘더 게임스’의 창간을 축하하며 한국 게임 산업 발전에 주춧돌을 놓을 새로운 게임 전문 매체가 탄생했다는 생각에 흐뭇해 진다. 1996년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만 해도 산업으로 불리기는 너무나 초창기였던 시절, PC잡지를 제외하고는 전자신문에서 유일하게 게임과 게임업체 소식을 다루고 있었다. 당시로는 제일 규모가 큰 게임회사라고 해야 직원이 60명을 넘지 않았고, 게임업체 수도 몇개 되지 않았다.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라면만 먹고 죽도록 고생하는 동아리형 게임회사가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회사라고 해도 개발 이외 분야의 전문인력을 갖춘 회사는 거의 없었다. 이런 예전의 게임산업 모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2004년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는 게임업계가 초심을 잃지 않도록 과거의 잊혀지고 묻혀져간 ‘게임1세대’를 추억하기 위함이다. 망각이 아닌 과거의 추억은 현재를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게임회사를 방문한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필자는 게임회사가 자유 분방한 스튜디오 분위기가 아니라 의외로 정형화된 회사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영리추구가 목적인 회사들의 개별적인 성공이 산업 발전의 원동력임을 이해한다면,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회사의 형태로 전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하지만 고생의 이유가 ‘영리추구’라는 것임을 깨달은 후에도 초창기 게임 회사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들을 극복해야 했다. 우선 게임회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비즈니스 경험이 전무한 게임 개발자들이기 때문에 회사로 자리잡기도 전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고, 설사 히트작으로 수입이 생겨도 조직화된 회사를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쉽게 말해 개발자와 사업가는 그 흐르는 피부터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부족함을 메우는 전문인력을 두면 되지만 초창기 게임회사 사장들의 인맥, 학연을 보면 주변에서 끌어올 수 있는 인재에도 한계가 있었다. 게임회사 사장들의 학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게임개발의 동기가 대부분 열렬한 게이머에서 게임개발자로 발전한 경우가 많았고, 전문 교육기관의 부재로 수준높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초창기 게임회사는 주먹구구식 한탕주의가 팽배한 유통시장 때문에 한번 울고 불법소프트웨어의 난립으로 두 번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 게임 1세대는 끈질긴 도전으로 결국 한국을 세계에서 몇 안되는 PC게임소프트웨어 개발국의 반열에 당당히 올려 놓았고 현재의 온라인게임산업 근간을 마련했다.
온라인게임들의 성공은 초창기 게임회사들의 문제를 극복한 데서 시작되었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당시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유명한 외국 게임 유통사에 한국에서 만든 게임데모를 소개했었는데, 보통은 답신이 없거나 거꾸로 외국 게임 라이선스를 갖고 가라는 답신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조지 루카스 감독이 만든 루카스아트 게임회사에서는 이런 경고가 날아들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것을 보내지 말 것.’
이 말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마치 내 피부 밑에 각인된 것처럼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게임산업계에 몸 담고 있는 한 그 경고는 나의 출발점이며 길을 잃었을 때의 지표가 될 것이다.
좌절은 끈질긴 도전을 낳는 것인지도 모른다. 1세대 게임회사들의 좌절은 도전으로 미래 게임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 남아있다고 믿고 있다. 게임 1세대를 추억하며, 그들에게 조용한 박수를 보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젠 사장(saralee@e-z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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