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게임 창조 '보물창고'
 
문화산업은 상상력을 먹고 자라는 나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상상력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기술력은 있는데 정작 참신한 시나리오나 캐릭터가 없다는 지적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강을 외치는 우리 온라인게임의 현실은 어떤가.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캐릭터와 세계관이 넘쳐난다. 판타지로 대변되는 서양의 게임을 흉내 내면서 국적 불명의 게임이 양산되고 있다. 상상력이 담보되지 않은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많은 개발자들이 해답을 찾고 있지만 막막하기 그지 없다. 문제는 ‘상상력의 뿌리’다. 우리 개발자들이 식상하지만 서양판타지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만의 ‘상상력의 뿌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서양판타지나 그리스 로마신화 못지않은 ‘한국신화’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더 게임스’가 한국콘텐츠진흥원, 동아시테크 등과 공동 기획한 ‘잊혀진 한국신화의 원형을 찾아서’는 ‘상상력의 뿌리’에 목말라하는 우리 개발자들에게 하나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다. 한국신화의 원형이 곳곳에 남아있는 ‘산해경’의 대가 정재서 교수가 풀어내는 한국신화와 캐릭터 이야기는 게임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영화 등 우리 문화산업 전반에 풍성한 상상력을 제공할 것이다.


요즘 우리는 상상력과 이미지의 시대라는 말을 자주 한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이버 공간을 통해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환경은 마치 상상력과 이미지에 의해 세계를 파악하고 그 힘을 믿었던 신화 시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미치는가. 아름다운 여신들의 이미지, 그리고 영웅들의 다양한 모험의 상상력이 그들을 한껏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프라인의 현실은 점차 가상현실로 옮겨가고 있으며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서 삶의 리얼리티를 체험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문화산업은 더욱 번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들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콘텐츠 즉 상상력의 내용이 이제는 문화산업의 발달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나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기발한 소재를 얻기 위해 저마다 안간힘을 쓴다. 이것은 상상력을 허황되고 비이성적인 것으로서 폄하했던 얼마 전의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난 인식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을 중시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마치 상상력이 무슨 물질처럼 개발해서 만들어지고 머리만 적당히 굴리면 쏟아져 나올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요즘 상상력을 개발(정확히 계발이라고 해야 하겠지만)하자는 것이 무슨 구호처럼 되어있는데 필자는 바로 여기에 우리 문화산업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상상력은 그렇게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에는 뿌리가 있다. 그것도 거대한 뿌리가.
 
켈트 문학이 빚어낸 ‘반지의 제왕’
 
‘반지의 제왕’이라는 대작의 성공이 그리 쉽게 얻어진 줄 아는가. 그것이 톨킨 개인의 비범한 상상력의 산물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 책의 이면에는 기독교보다도 오래된 켈트 문화의 전통이 있고 아더왕 전설을 비롯한 중세 로망스 문학의 유산이 있다. 이러한 전통과 유산을 톨킨이라는 옥스퍼드의 대단한 학자가 필생의 연구 끝에 현대의 문학작품으로 재현해 낸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도 한 이혼녀가 생계를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서 쓴 것 정도로 생각했다가는 역시 큰 오산이다. 그녀 역시 대학에서 중세 문학을 공부한 덕분에 자신들의 마법 문화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었고 그 지식을 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톨킨이나 조앤 롤링 등의 개인적 재능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문제는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의 뿌리가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 풍토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문화산업의 세계적 대국이라 할 일본은 어떠한가. ‘포켓몬’의 수많은 기이한 캐릭터들, 이들은 제작자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일까. ‘노!’ 일본에는 옛날부터 수많은 요괴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에마키(繪卷)라는 그림책에 다양한 괴물 이미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유산을 바탕으로 이미 백년 전쯤에 요괴학(妖怪學)이라는 학문이 성립되어 현대의 문화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온천장으로 모여드는 각양각색의 요괴들, 그들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든 것일까. 역시 천만의 말씀이다. 그 요괴들 하나하나는 모두 수백년 전에 그려진 에마키의 요괴 이미지에 근거를 대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때 유행했듯이 서구 마법담이나 기사담을 흉내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설픈 판타지 소설을 짓거나 캐릭터든 이야기든 무조건 기발하고 신비하게 상상만 해대면 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발상 자체가 얼마나 무모하고 뿌리없는 시도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상상력의 뿌리는?
 
물론 필자의 이같은 발언은 좀 과장된 점이 없지 않다. 요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이처럼 피상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전통이라든가 문화 유산의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고 근본적으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보기에 아쉬운 것은 여전히 우리는 앞서 말한 나라들에 비해 문화산업과 전통 유산과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맺어져 있지 못하다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책임이 있다. 그동안 엄숙주의에 젖어서 학문을 너무 대중적 욕구와 괴리된 것으로 보고 성역화시켜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요괴학과 관련된 전국적 학술 대회에 학자들뿐만 아니라 만화가, 소설가, 영화감독도 함께 참여해 진지하게 토론한다. 우리는 더욱 학문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좁혀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자, 이제 다시 문제의 본질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어느 나라든 나름대로의 상상력의 전통이 있고 세계무대에서 각자 자신의 상상력으로 승부를 겨룬다. 영국이 갑자기 중국의 도교나 무협 판타지를 들고 나오지 않으며 일본이 서양 마법담을 문화산업의 주재료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 자신들의 토착적인 요괴담을 내세웠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요리로 비유를 든다면 일본에는 일식이 있고 서양에는 양식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으로 요리를 해야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뿌리 없는 상상력을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풍토에서 생겨난 상상력을 되살리는 일이다.
 
서양신화 못지 않은 한국신화
 
그렇다면 우리 상상력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정말 서양이나 일본 못지 않은 상상력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그래봤자 솔직히 중국이나 일본의 아류는 아닌가. 독자들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는 근대 초기에 국권을 상실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의 민족 허무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에 대한 상실감을 갖게 했다. 과거의 전통과 현재와의 깊은 단절은 이 때 비롯되었다. 우리 상상력의 뿌리에 대한 회의와 불신도 여기에서 생겨나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상상력의 근원은 어느 나라이든 자국의 신화에 두고 있다. 신화야말로 상상력의 원천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신화는?’ 이렇게 묻기 시작하면 우리는 곧 자신감을 잃는다. 한국신화는 과연 저 아름답고 풍부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교할 때 얼마나 빈약하고 초라한가. 기껏해야 단군신화나 몇 가지 건국신화 뿐 아닌가. 물론 이러한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한국신화는 최근 발굴된 무속신화 까지 포함하면 분량에서 그렇게 빈약하지 않고 내용도 재미있고 다양한 것들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신화의 내용과 범위는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래의 한국신화는 지금 우리가 생각해온 것 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아득한 신화 시대 우리 민족은 지금의 한반도에서만 살지 않았었다. 드넓은 대륙을 무대로 살아왔다. 그러나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과거에 지녔던 많은 신화들을 잊고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반도 내에서만 생겨난 것으로 축소시켜왔다.
현재까지 우리 신화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제왕운기(帝王韻紀) 등 극히 제한된 고서 아니면 광개토왕 비문 등의 금석문(金石文), 그리고 후한서(後漢書)와 논형(論衡) 등 중국의 고서에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몇 가지 문헌 자료에만 국한해서 한국신화를 규정한다면 한국신화의 분량은 더없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산해경 속 잊혀진 이야기
 
그러나 신화는 근대 이후의 영토 개념에 의해 그 영역이 정해질 대상이 아니다. 역사, 고고학적 견지에서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가 상고 시대에는 중국의 동방, 북방 지역이었다는 사실이 정설인 만큼 우리가 한국신화의 자료를 훨씬 후대의 국내 문헌에만 한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문화 원천을 축소시키는 행위가 될 것이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은 ‘삼국유사’ 등 한국의 문헌에 담긴 신화의 원형(proto-type)에 해당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헌이 미처 담지 못한 잊혀진 이야기도 다수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한국신화 원형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빈약한 국내 문헌 자료에 구애되지 않고 자료 분석의 시야를 중국의 다양한 신화자료에 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기존의 국내 신화 자료를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즉 한국신화의 자료 영역을 넓혀 잊혀진 신화를 보완하고, 한국신화의 원형을 찾아보는 의미 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많은 신화자료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료는 앞서 말한 ‘산해경’이라는 책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중국의 동방에 살던 민족에 의해 지어져서 우리 민족의 고대 문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산해경’에 나타난 한국신화의 원형을 중심으로 잊혀진 우리 상상력의 뿌리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webmaster@theg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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